2100년, 아이 낳을 병원은 남아 있을까…'아름다운 미래'의 조건 [황덕현의 기후 한 편]

경제

뉴스1,

2026년 7월 11일, 오전 07:30

극작가 플로라 윌슨 브라운 작품 연극 '아름다운 미래가 오고 있다'(The Beautiful Future Is Coming) © 뉴스1 DB

2100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임신한 과학자 아나는 국제종자저장고에 갇혀 있다. 극한기상이 멈추지 않아 아이를 낳을 안전하고 위생적인 병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인류는 전쟁과 재난에 대비해 미래의 식량이 될 종자를 보관했지만, 정작 다음 세대가 안전하게 태어날 장소는 확보하지 못했다.

영국 연극 '아름다운 미래가 오고 있다'(The Beautiful Future Is Coming)의 한 장면이다. 플로라 윌슨 브라운(Flora Wilson Brown)이 쓴 이 작품은 1856년 미국 뉴욕과 2027년 영국 런던, 2100년 스발바르를 오가며 기후위기가 삶과 출산의 조건을 어떻게 바꾸는지 조명한다. 세 시대를 잇는 것은 기후과학의 경고와 사랑, 출산을 둘러싼 불안이다.

1856년의 주인공은 실존 과학자 유니스 뉴턴 푸트(Eunice Newton Foote)다. 그는 이산화탄소가 열을 붙잡아 대기 온도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실험했지만, 당시 과학계의 성차별과 비전문 연구자라는 한계 속에서 연구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2027년 런던에서는 탄소배출 보고서를 작성하는 클레어와 댄이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아이를 원하면서도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기후 속에 새 생명을 데려와도 되는지 고민한다.

연극은 '기후위기 시대에 아이를 낳아도 되는가'를 묻는다.그러나 실제 문제는 개인의 출산 의지보다 복잡하다. 아이를 원하는 사람이 낳고 기를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2025년 14개국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20%는 자신이 원하는 규모의 가족을 이루지 못했거나 앞으로도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39%는 경제적 제약 때문에 원하는 것보다 자녀를 적게 두게 됐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비싼 주거비와 불안정한 일자리, 돌봄 부담, 적절한 배우자를 만나기 어려운 상황도 장벽으로 꼽혔다. 기후변화와 전쟁 등 세계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가족 규모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출산과 육아가 이미 시간과 비용, 노동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기후위험은 부담을 하나 더 보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의 안전 자체를 흔든다.

의료체계가 흔들리기 전부터 고온은 산모와 태아의 몸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202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1도 높아질 때 조산 가능성은 평균 4% 증가했다. 폭염에 노출됐을 때는 조산 가능성이 26%, 산과적 합병증 가능성이 25% 높아졌다. 임신성 당뇨와 선천성 이상 등도 고온 노출과 연관성을 보였다. 연구 방식과 온도 기준이 제각각이고, 기존 연구가 고소득·온대 국가에 집중됐다는 한계가 있으나 연구 간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폭염이 잦아지는 시대에 유의해야 할 위험이다.

기후위험은 산모의 몸에만 작용하지 않는다. 병원으로 가는 도로가 침수되거나 전력과 수돗물 공급이 끊기면 의료진과 시설이 있어도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세계보건기구는 36억명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본다. 의료 기반이 약한 지역은 폭염과 홍수, 폭풍에 대응할 능력도 떨어진다. 기후변화는 질병을 늘리는 동시에 의료인력과 시설, 식수·전력 공급을 흔들어 보편적 의료보장까지 약화한다.

아이가 자라 돌봄시설과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도 문제는 계속된다.폭염과 홍수, 태풍은 어린이집과 학교를 닫게 하고 일상을 중단시킨다. 유니세프는 2024년 폭염과 홍수, 태풍 등으로 85개국 어린이 2억4200만명의 교육이 중단됐다고 집계했다. 세계 취학 아동 7명 중 1명꼴이다.

태어난 지 열흘 남짓 된 딸을 돌보면 전기와 물, 병원과 냉방이 육아의 기본 조건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몇 시간 간격으로 수유하고 체온과 호흡을 살피는 일도 쉽지 않다. 여기에 폭염이나 정전, 침수로 병원과 돌봄 시설이 멈춘다면 부모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

기후위기는 부모의 각오보다 사회 기반의 내구성을 시험한다.

따라서 출산율 정책과 기후 적응 정책을 따로 다뤄선 안 된다. 분만실과 신생아집중치료실에는 폭염과 정전에도 작동할 냉방·비상전력·급수 체계가 필요하다. 홍수나 산불 때 임신부와 영유아가 병원으로 이동할 경로도 마련해야 한다. 어린이집과 학교에는 단열과 환기, 그늘, 녹지를 늘리고 영유아와 임신부를 폭염과 홍수 등 기후재난 대책에서 별도 보호 대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아이 한 명을 낳으면 각종 지원금을 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과 이미 태어난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조건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출생아 수만 늘리는 데 집중하고, 아이가 다닐 병원과 어린이집, 학교가 재난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면 정책은 절반에 그친다.

연극 제목의 '아름다운 미래'는 과학의 경고를 듣고, 돌봄을 개인과 가족만의 책임으로 남겨두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한 미래에 가깝다.

연극 속 인류는 미래의 종자를 지켰지만, 산모가 돌아갈 병원은 지키지 못했다.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를 낳고 길러도 안전한 사회부터 만들어야 한다. 기후위기의 영향을 가장 오래 감당할 미래세대에게 지금 세대가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뉴스1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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