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 전경(중소벤처기업부 제공)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인공지능(AI)과 대형 투자로 자금이 집중되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만 골라 투자하는 '선별 투자'가 뚜렷해지고 있다.
정부는 투자 온기를 초기 스타트업까지 확산하기 위해 이달부터 벤처캐피탈(VC)의 운용 자율성을 높이는 내용의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규제 완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등 회수시장 회복과 출자자(LP) 자금 유입이 함께 이뤄져야 투자 저변이 넓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돈은 늘었는데 투자받는 기업은 줄었다…AI·대형 딜 쏠림
이번 시행령 개정의 핵심은 개별 펀드마다 적용되던 창업·벤처기업 투자 의무를 운용사(GP) 전체 기준으로 전환하고, 투자 의무 이행 기간을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린 것이다. 이에 따라 VC는 개별 펀드 운용 부담을 덜고 시장 상황에 맞춰 보다 유연하게 투자 전략을 운용할 수 있게 됐다.벤처기업이여러 펀드를 운용할 때 개별 펀드마다 투자 의무를 맞출 필요 없이 전체 기준만 충족하면 되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13일 민간 스타트업 데이터 플랫폼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비상장 스타트업·중소기업 대상 투자 규모는 282건, 5조 6271억 원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누적 기준으로는 540건, 7조 8005억 원이다. 투자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4% 감소한 반면 투자금액은 204.7% 급증했다. 지난해 연간 투자금액 6조 9358억 원을 이미 넘어선 규모다.
겉으로는 시장이 빠르게 반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금 흐름은 제한적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100억 원 이상 대형 투자 딜은 141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크게 늘었고, 투자금액 기준 비중은 93.0%까지 확대됐다. 투자금 증가가 일부 대형 거래에 집중되면서 실제 투자 저변은 넓어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초기 투자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초기 라운드(시드~시리즈A) 투자 건수는 36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9% 감소했다. 반면 중기·후기 라운드 중심으로 투자가 늘면서 전체 투자금액에서 초기 라운드 비중은 16.1%로 낮아졌다.
AI·로보틱스 분야 투자도 두드러졌다. 해당 분야 투자 건수는 16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투자금액은 2조 6850억 원으로 485.2% 급증했다. 전체 투자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3%였으며, 초기 라운드 투자금 가운데 AI·로보틱스 비중은 51.7%, 시드 단계에서는 91.5%에 달했다.
투자 규모 확대가 곧 투자 저변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벤처투자 시장의 '양적 회복'과 '질적 회복'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AI는 반도체와 GPU, 데이터센터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산업인 데다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VC들이 상대적으로 투자 회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VC 업계 관계자는 "AI·로보틱스 등은 연구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데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분야"라며 "VC 역시 기술 경쟁력과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행하면서 자금이 보다 선별적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 풀어도 자금 안 돈다…관건은 회수시장·LP 자금 순환
정부는 투자금 회복 흐름을 초기 스타트업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VC 운용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모태펀드 출자를 확대하며 민간 자금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벤처투자는 3조 3000억 원으로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고, 벤처펀드 결성액은 4조 4000억 원으로 최대치를 경신했다.
다만 자금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최근 금리 변동성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으로 민간 LP 자금 모집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며 "AI 분야 투자 확대와 대형 딜 중심 흐름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모태펀드를 통한 출자 확대와 초기 투자 인센티브 강화 등을 통해 민간 자금 유입을 촉진하고, 초기·재도전·임팩트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투자 기반을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VC 업계는 규제 완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투자 여력을 근본적으로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투자 재원은 결국 출자자(LP) 자금과 회수 성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VC 업계 관계자는 "운용 규제를 완화하는 것만으로는 투자 여력이 크게 늘어나기 어렵다"며 "IPO와 M&A 등 회수시장이 정상화돼 자금이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성장 가능성만으로 투자받을 수 있는 시장이었다면 지금은 기술 경쟁력과 글로벌 확장 가능성, 후속 투자 유치 가능성까지 함께 검증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자금이 부족해서 투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자금이 더 집중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yoong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