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ESG 공시에 재계 발칵…"美·유럽식 속도조절 필요"

경제

이데일리,

2026년 7월 13일, 오후 07:14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당정이 발표한 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를 둘러싸고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초안보다 적용 대상 기업이 크게 늘어나고, 사업보고서에 ESG 관련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시하도록 기준을 강화해서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도 기업 부담을 고려해 제도 시행 속도를 조절하는 만큼 국내 제도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2028년부터 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온실가스 배출량 등 ESG 관련 지속가능성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대상은 2029년 자산 5조원 이상, 2030년 2조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공시 대상 기업은 2028년 291개사에서 2029년 3171개사로 1년 만에 10배 이상 확대된다.

ESG 공시(지속가능성 공시)에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탄소 감축 목표와 이행 현황, 기후 변화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등 ESG 관련 정보가 담긴다.

2월 정부 초안은 2028년부터 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거래소 공시를 먼저 적용한 뒤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최종안은 대상 기업을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단계적 법정공시 전환이 아닌 곧장 법정공시로 직행하도록 했다. 법정공시인 사업보고서는 자본시장법상 과징금·손해배상·형사처벌 책임을 진다.

정부는 도입 초기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행 후 3년간 ESG 공시 정보 전반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책임을 면제하기로 했다. 다만 재계는 소송 리스크가 여전하다고 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속가능성 공시는 기후 시나리오와 전환계획, 공급망 탄소배출량 등 미래 예측과 추정이 포함되는 비재무 정보”라며 “법정공시로 의무화하면 행정제재, 형사책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의관에서 당정협의회를 개최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ESG공시 제도화 최종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의관에서 당정협의회를 개최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ESG공시 제도화 최종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때문에 미국과 EU, 일본 등 주요국들의 속도조절 추세를 참고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EU, 미국, 일본 등은 ESG 공시 확대를 경쟁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적용 대상을 무리하게 확대하기보다 시행 속도를 조절하고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EU다. EU는 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과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속가능성 공시·공급망 실사 규제를 추진했지만, 최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럽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에서 “유럽은 탈탄소와 디지털 전환, 안보 역량 강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지만 현재의 생산성·혁신·에너지 비용·규제 구조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EU는 2026년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해 CSRD 적용 대상을 순매출 4억5000만유로 초과, 직원 1000명 초과 기업으로 축소했다. CSDDD도 전 세계 순매출 15억유로 초과, 직원 5000명 초과 기업 중심으로 조정했다. 송시현 법무법인 LKB평산 파트너변호사는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기고에서 “옴니버스 패키지에 따라 적용 기업 수가 크게 줄었고, 실제 적용 대상도 극소수의 초대형 기업에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4년 기후공시 규칙을 채택했지만 미국 25개 이상 주(州)와 기업, 업계단체가 즉시 소송을 제기하면서 효력이 정지됐다. 일본은 법정 공시 체계를 도입하되 대상과 절차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EU는 공시 데이터 총량을 60% 이상 줄였고, 일본은 프라임시장 초대형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주요국 ESG 공시 정책이 기업 부담과 산업 경쟁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손성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공시 부담이 급격하게 커질 수 있다. 공시를 위한 공시가 되지 않도록 주요국의 제도 변화와 시행 속도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ESG공시가 정말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지 봐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기업입장에서는 비용만 추가로 발생하고, 정보 제공 효과는 없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ESG 공시 시행 전까지 기업의 우려를 줄여줄 구체적인 방안이 중요하다”며 “추진위원회 인적 구성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 주요 내용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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