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비트코인은 17년 넘게 중앙 운영기관 없이 안정적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해왔고, 세계 곳곳의 참여자들이 공통된 합의규칙에 따라 거래를 검증해왔다. 가격의 급등락과 투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보여준 기술적 생존력은 블록체인 기반 자산이 현실에서 지속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비트코인이 암호자산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면, 그 문을 통해 가장 빠르게 세력을 확장한 것은 역설적으로 달러였다.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스테이블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국가가 발행하지 않고 특정 기관이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화폐에 대한 도전으로 출발했다. 반면 오늘날 스테이블코인의 대부분은 달러 가치에 연동되어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시장가치 기준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약 98%가 달러에 연계되어 있다. 암호자산이 기존 통화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그 생태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거래수단은 결국 디지털 형태의 달러가 된 셈이다.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를 형상화한 동상이 2021년 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세워졌다. (사진=이데일리DB)
사토시가 공개 활동에서 사라진 것은 비트코인의 분산성과 자율성을 상징하는 요소가 되었다. 창시자가 계속 모습을 드러내어 기술적 방향을 지시하거나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비트코인은 사토시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체제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토시가 떠난 뒤에도 비트코인은 멈추지 않았다. 창시자의 부재가 비트코인은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토시가 초기 채굴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트코인은 약 100만~110만 개다. 이는 초기 블록의 채굴 기록에서 발견되는 이른바 ‘파토시 패턴’을 분석한 결과로, 일부 연구자들은 당시 한 명의 지배적인 채굴자가 대규모 비트코인을 채굴했으며 그 인물이 사토시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이 채굴자와 관련된 주소가 약 2만2000개에 이른다는 분석도 제시되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채굴된 뒤 오랜 기간 이동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장기간의 침묵은 비트코인이 창시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했다. 사토시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물량이 시장에 나온다면 가격과 투자심리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사토시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채굴 물량의 대부분은 현금화된 흔적 없이 남아 있으며, 사토시가 2011년 이후 비트코인의 발전 방향에 공개적으로 개입한 사실도 확인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창시자로부터 독립하여 하나의 자율적인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사진=챗GPT)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의 기능은 이제 암호자산 매매를 위한 대기자금이나 결제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은 여전히 암호자산 거래와 결제에 주로 사용되지만 국경 간 송금, 일부 무역대금 결제, 해외 근로자의 본국 송금과 달러 가치의 보관수단으로도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도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국제송금보다 빠르고 저렴한 지급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자국 통화의 가치가 불안하거나 달러 계좌를 개설하기 어려운 국가에서는 스마트폰과 디지털지갑을 이용해 달러 가치에 연동된 자산을 비교적 쉽게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이 강력한 유인이 된다.
과거 달러를 보유하려면 은행에서 달러 예금을 개설하여 실물 달러를 구입해야 했다. 외환규제와 송금한도와 같은 현실적 장벽도 존재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이러한 장벽을 낮춘다. 이용자가 보유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미국 정부가 발행한 법정화폐가 아니라 민간회사가 발행한 디지털 토큰이다. 대표적인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발행회사가 현금·은행예금·미국 단기국채 등으로 준비자산을 구성하고, 1개의 코인을 1달러로 상환하는 구조를 취한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는 민간회사가 발행한 토큰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디지털 형태의 달러로 받아들여진다.
이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밖에서 달러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통로가 된다. 달러 계좌를 보유하지 않은 사람도 달러 가치에 연동된 자산을 보유하고, 이를 다른 나라로 전송하거나 물품대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미국 국채 수요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회사들은 이용자가 맡긴 달러를 그대로 금고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을 미국 단기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운용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는 미국 국채의 수요도 증가할 수 있다. 암호자산 시장의 성장이 결과적으로 달러와 미국 국채에 대한 새로운 국제 수요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그러나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미국 이외의 국가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자국 통화보다 널리 사용되면 통화주권이 약화되고 통화정책의 효과도 떨어질 수 있다. 경제가 불안할 때 은행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급격히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인한 디지털 달러화와 그에 따른 예금유출 및 통화정책 약화를 경고하는 이유다.
여기에서 하나의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비트코인은 기존 통화체제에 맞서기 위해 탄생한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달러의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설계된 것인가. 비트코인 백서가 제시한 직접적인 목적은 기존 통화체제나 달러 패권에 맞서는 데 있지 않았다. 금융기관과 같은 신뢰받는 제3자를 거치지 않고 당사자끼리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전자현금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또한 사토시가 달러의 세계적 확산을 기획했거나 특정 국가기관이 미국의 장기 전략에 따라 비트코인을 설계했다는 증거도 현재까지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비트코인이 달러 패권의 확대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의도와 결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중앙의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당사자끼리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전자현금시스템을 제시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개척한 블록체인 생태계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성장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와 세계적 이용자 기반을 제공했다. 중앙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거래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통화인 달러의 디지털 유통망을 넓혀준 셈이다.
비트코인으로 시작된 암호자산 혁명의 가장 큰 제도적 수혜자는 사토시 개인이 아니라 미국 달러일 가능성이 크다. 사토시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채굴 물량은 대부분 움직이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반면 달러는 비트코인이 개척한 블록체인 생태계인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디지털지갑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의 금융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전자현금시스템을 제시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열어놓은 길을 가장 빠르고 넓게 차지한 것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다. 이것이 사토시가 계획한 결과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탈중앙화를 향해 출발한 암호자산이 오늘날 달러 중심의 디지털 금융질서를 강화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문성 경희대 경영대학원 세무관리학과 객원교수 / 강남대 세무전문대학원 특임교수 / 법무법인 SL파트너스 고문. △1960년 부산 출생 △서강대 경영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회계학) 석사 △고려대 대학원 법학(조세법) 박사 및 경영학(회계학) 박사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심리학 석사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 공학석사(블록체인전공) △공인회계사, 세무사, 증권분석사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비상임이사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업회생지원위원회 위원장 △한국회계학회·삼일회계법인 저명교수 △전 국세청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원회 본위원 △전 국세청 국세심사위원 △전 한국도로공사 비상임이사 △전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전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블록체인 유튜브 오문성의 Pick Show 운영 중. (사진=이영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