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이어 호남 찍고 미국까지…최태원 '팹 증설'에 사활 건 이유

경제

뉴스1,

2026년 7월 19일, 오후 12:00

광주 시민들이 29일 광주 KTX송정역에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서남권 투자 발표 생중계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2026.6.29 © 뉴스1 김태성 기자
"공장(팹)을 더 빨리, 더 많이."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034730)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제주에서 열린 2026년 대한상의 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메시지는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반도체 기술력만큼이나 생산능력이 중요해졌고, 가능한 한 많은 생산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설명하면서 "당초 계획보다 12년 앞당겨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두고서도 "정부가 전기와 용수, 부지 등 인프라를 마련한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고, 미국 투자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능하다면 지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기술 경쟁과 생산능력 경쟁 동시에 벌어져
언뜻 보면 각각의 질문에 그저 답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종합하면 전략이 드러난다. AI 시대 메모리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생산기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기술 경쟁'과 함께 '생산능력 경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AI 서버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증하자 고객사들은 가격보다 물량 확보를 우선시하는 상황이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들이 차세대 AI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이 "내년 AI 메모리 수요는 올해보다 60~100%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시장 판단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공급 확대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메모리 부족 현상이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생산시설 확보는 더 이상 기업 차원의 투자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과제가 됐다는 해석이다.

반도체 공장은 수년의 건설 기간이 필요한 데다 대규모 전력과 용수, 첨단 장비, 숙련 인력까지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최 회장이 "용인도 쉽지 않다"고 거듭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장만 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전력망과 용수 공급, 인허가 등 국가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각에서 특정 지역 투자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최 회장의 발언으로 보면 '호남' 자체보다는 '추가 생산 거점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호남도, 미국도 새로운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AI 수요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용인 클러스터만으로는 장기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15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9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대한상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7.15 © 뉴스1

공급 확대가 시장 키울 것…지금 가격 비정상적
주목할 점은 최 회장이 공급 확대가 오히려 시장을 키울 것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통상 공급 부족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최 회장은 "지금 가격은 비정상이다. 가격은 오히려 안정되는 것이 맞다"며 공급을 늘려 시장 전체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시대 반도체 경쟁의 승부처가 가격이 아니라 안정적인 공급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대목이다.

이와 관련 최 회장은 "이율배반적인 것 같지만 내 땅을 잘 가꿔놔야, 내 농사를 계속 잘 지어야 계속 그 안에서 수확이 나온다. 그런데 그걸 한꺼번에 전부 다 먹어 치우면 말이 되느냐"고 비유하기도 했다.

결국 최 회장이 이번 간담회에서 강조한 팹 증설은 특정 지역 투자 여부를 넘어 AI 시대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AI 시대 반도체 시장의 승부가 기술을 넘어 생산능력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공급망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장기 전략을 공개한 셈이다.

flyhighr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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