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수요자' 다시 쓴다…핀셋 지원론 부상

경제

이데일리,

2026년 7월 19일, 오후 03:36

'청년=실수요자' 다시 쓴다…핀셋 지원론 부상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대출을 무리하게 더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계약한 생애최초 무주택 실수요자만이라도, 계약금을 날리는 상황은 막아달라는 겁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한 국민 제안 게시판에는 최근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불안에 빠진 청년과 신혼부부의 사연이 잇따르고 있다. 얼마전 주택 매매 계약을 체결한 A씨는 오는 10월 잔금을 치러야 하지만, 은행들이 대출 신청을 받아주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A씨는 “이미 낸 (주택매매) 계약금은 평생 모은 돈인데, 이러다 날리는 것 아닌지 걱정돼 새벽에 잠이 깨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결혼 3년 차 신혼부부 B씨도 생애 첫 집 마련을 위해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약 2억원을 납입했지만, 은행권 대출 한도 축소로 잔금을 치르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다. 그는 “생애최초 실수요자는 투기꾼이 아니다”며 “이미 세운 자금계획만이라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정부 게시판에 이 같은 호소가 이어지는 것은 청년층의 내 집 마련 여건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과 대출 규제가 맞물리면서 부모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집을 마련하려는 청년층의 주거 사다리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청년·무주택자=실수요자’라는 기존 주거금융 지원체계를 유지할지, 보다 선별적인 지원체계로 전환할지를 놓고 논의에 들어갔다. 오는 23일 대통령 주재 부동산 대토론회에서는 청년 주거금융과 정책모기지 개편 방향이 핵심 의제로 논의될 전망이다.

◇2030세대 주택보유율 21.5%…자가 줄고 월세 늘어

19일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주택금융 및 보금자리론 실태조사’에 따르면 30대 이하 가구주의 주택보유율은 2019년 27.4%에서 2025년 21.5%로 하락했다. 자가 거주 비중도 25.8%에서 19.2%로 낮아진 반면 보증금 있는 월세 거주 비중은 28.7%에서 34.6%로 높아져 청년층의 주거가 월세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나타났다. 신혼가구의 주택보유율 역시 36.0%에서 32.2%로 떨어졌다.

은행 대출 문턱이 높아질수록 정책금융 의존도는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버팀목대출 등을 포함한 정책 주택금융 잔액은 지난해 5월 330조4986억원에서 올해 5월 337조4869억원으로 1년 새 약 7조원 늘었다.

하지만 정책금융도 예전만큼 든든한 버팀목은 아니다. 보금자리론 금리는 최근 5%대로 올라섰고 수도권 집값 상승으로 대상인 6억원 이하 주택도 빠르게 줄고 있다. 시중은행 대출이 어려워질수록 정책모기지로 수요가 몰리지만 정작 이용 문턱은 함께 높아지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권 안팎에서는 청년 주거금융 지원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대열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현재 자산뿐 아니라 미래소득을 대출 심사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자산만으로 대출 한도를 정하면 안정적인 직업과 상환능력을 갖춘 청년도 집을 사기 어렵다”며 “부모 지원 여부에 따라 청년층 내부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지원 확대가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금융지원만 확대하면 혜택은 매도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청년층 대출 완화를 “목마른데 소금물을 마시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청년을 모두 실수요자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서영수 SK증권 상무는 “서울 아파트 거래의 약 40%를 30대가 차지한다”며 “부모의 자산 지원을 받아 고가 주택을 구입하는 청년과 자력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청년을 동일하게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세대출 역시 보편 지원보다 취약계층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 겸 경제전망실장은 “전세대출이 주거 안정을 돕는 기능도 있지만 전셋값과 집값을 끌어올리는 측면도 있다”며 “시장 안정이 필요한 시기에는 취약계층 중심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래소득 반영해야” vs “집값·부채만 키워”

결국 논쟁의 핵심은 대출을 더 풀 것이냐가 아니라 누구를 실수요자로 볼 것이냐다. 부모 자산을 바탕으로 이미 충분한 구매력을 갖춘 청년과 부모 도움 없이 소득만으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청년을 같은 기준으로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정책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23일 부동산 종합 대토론회에서 정책모기지와 전세자금대출, 청년 주거금융, 가계대출 총량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청년·무주택자를 일률적으로 실수요자로 보는 기존 지원체계를 유지할지, 소득과 자산, 상환능력 등을 반영한 ‘핀셋 지원’으로 전환할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가계부채 관리와 실수요자 보호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정교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청년층 지원도 연령이나 무주택 여부만으로 대상을 정하기보다 소득과 상환능력, 보유 자산 등을 함께 살펴 실제 금융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집중하는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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