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중국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출 문턱을 낮추고 이자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가계가 떠안은 빚은 소비를 가로막고 있다. 신용도가 높은 차주들은 고용과 집값 불안으로 대출과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는 반면, 당장 돈이 필요한 저소득·저신용층은 이미 쌓인 부채 탓에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렵다.
대출을 늘려 소비를 살리려는 정책이 오히려 연체 위험을 키우는 역설이 벌어지는 셈이다. 정부가 대출 확대를 주문할수록 우량 차주는 대출을 외면하고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차주만 남는다. 은행들은 부실을 우려해 심사를 강화하면서 소비를 살리려고 풀어놓은 신용이 다시 대출 위축으로 돌아오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한 업무시설 앞을 배달 노동자가 지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소비대출 지원을 확대했지만 고용과 소득 불안 속에서 가계는 소비보다 저축과 빚 상환을 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중국 국무원은 이달 중순 '소비 확대 제15차 5개년 계획'을 공개했다. 가계소비 확대만을 따로 다룬 중국의 첫 5개년 계획으로, 2030년까지 사회소비품 소매판매액을 60조위안(약 1경2972조원) 안팎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임금과 재산소득을 높이고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한편 자동차와 주택 구매 제한도 완화해 가계가 돈을 쓰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이 소비만을 위한 5개년 계획을 따로 마련한 것은 그만큼 내수 부진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중국 경제는 오랫동안 부동산과 사회기반시설 투자, 수출에 의존해 성장해왔다. 그러나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고 주요 교역국의 통상 압박까지 거세지면서 가계 소비를 새 성장 동력으로 키우지 않고서는 기존 성장 방식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자 지원에도 대출 줄인 가계…예금만 1660조원 증가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가장 먼저 꺼내 든 수단은 소비대출이다. 소비대출은 주택 구입이나 사업 자금이 아니라 생활비와 물품 구매에 쓰기 위해 받는 대출이다. 중국 당국은 올해 초 개인이 금융회사에서 받은 대출을 실제 소비에 사용하면 정부가 연 1%포인트의 이자를 지원하는 제도를 확대했다. 차주 한 명이 금융회사 한 곳에서 받을 수 있는 연간 지원 한도는 3000위안(약 66만원)이다. 자동차와 가전, 가구 등 목돈이 들어가는 소비를 되살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가계는 정부 기대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은 3668억위안(약 80조3000억원) 감소했다. 신용카드와 소비대출 등이 포함된 단기 가계대출은 5881억위안(약 128조8000억원)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예금은 7조5800억위안(약 1660조원) 늘었다. 정부가 소비를 독려했지만 가계는 대출 대신 저축을 택한 셈이다. 집값과 고용, 앞으로 벌어들일 소득에 대한 불안이 이어지면서 금리가 낮아져도 선뜻 빚을 내 돈을 쓰지는 않는 것이다.
가계가 특히 줄인 것은 목돈이 들어가는 소비였다. 6월 자동차 판매는 전년보다 16.1% 감소했고 가전기기는 8.7%, 인테리어 자재는 10.5% 줄었다. 집값 하락과 고용 불안이 이어지면서 자동차나 가전처럼 당장 사지 않아도 되는 품목부터 구매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물가를 반영한 실질 기준으로 전년 동기보다 4.2% 증가했지만 1인당 소비지출 증가율은 2.7%에 그쳤다. 가계가 늘어난 소득을 소비하기보다 저축하거나 기존 빚을 갚는 데 우선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빚더미에 막힌 소비…해법은 소득과 복지
가계가 신규 대출을 배경에는 이미 불어난 부채와 연체 위험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거시 연구 기업 가베칼 드래고노믹스(Gavekal Dragonomics)는 지난해 중국의 가계 부실대출이 전년보다 20% 넘게 증가한 2조2200억위안(약 480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6%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부실 확대가 지난해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출 문턱을 낮춘 결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난 것으로 본다. 소득이 충분히 늘지 않은 상황에서 빚만 늘었고, 부동산 침체까지 겹치면서 상환 능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올해 들어 소비대출 심사에서 보유 부동산보다 급여소득을 더 중시하며 다시 문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가계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된 것은 소비 회복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이다. 스탠퍼드대 중국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중국 가계 자산의 약 70%가 부동산에 묶여 있으며, 집값이 10% 떨어질 때 가계소비는 1.5~2.3%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집값 하락이 자산 손실을 넘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소비를 살리려면 대출금리를 낮추는 것보다 가계소득과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료·교육·노후 부담이 큰 상황에서는 소득이 늘어도 가계가 소비보다 저축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금과 이전소득을 늘리고 복지 지출을 확대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낮춰야 소비가 살아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도 이번 5개년 계획에 소비대출 지원뿐 아니라 임금·재산소득 확대와 사회보장 강화 방안을 함께 담았다. 다만 정책이 가계가 체감할 만한 소득 개선과 소비 확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고용 불안이 이어지는 한 추가 부양책이 나오더라도 내수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