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으로 촬영한 강원 평창 대관령 특수조림지 전경. (사진=동부지방산림청)
대관령은 삼국시대부터 관련 지명이 기록으로 남을 정도의 유서 깊은 지명이다. 어원은 고개가 험해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뜻인 ‘대굴령’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고,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명칭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강릉지역에서 대관령을 걸어서 넘어가는 길인 ‘대관령 옛길’은 고려와 조선조 이래 영동과 영서를 있는 교역로이자 교통로로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산림녹화 및 인공조림의 성공지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 일대 숲은 강원 영동과 영서 지역의 특수한 기후의 영향으로 다양한 수목과 고산지대 식물이 생육하고 있다. 이 중 대관령 특수조림지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유림 10대 명품숲에 이어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에 선정됐다.
강원 평창 대관령 특수조림지. (사진=박진환 기자)
대관령 특수조림지는 한반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악독한 목재 수탈로 대관령 일대는 모두 민둥산이 됐다. 여기에 한국전쟁을 거쳐 화전민이 대거 이주해 온 뒤 이 일대는 심각하게 황폐화됐다.
그 결과 홍수와 가뭄 피해는 일상다반사가 됐고, 주민들의 생활고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산림녹화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온이 영하 30도에서 영상 30도까지 온도차가 심할 뿐만 아니라 최대 풍속이 초속 45m에 달하는 대관령 황소바람은 최악의 환경이었다. 어린 묘목들은 대부분 고사했고, 녹화는커녕 나무 몇 그루 심는 것조차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에 산림청과 지역주민들는 강풍과 추위 등 악조건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방풍책·발·지주목과 같은 특수시설을 설치했고, 내한성이 강한 전나무·잣나무·낙엽송 등 13개 수종을 선발해 산의 정상·중앙·하단부로 분류해 일반 조림지에 사용하지 않는 특수설계 방식으로 조림을 시행했다.
방풍책은 바람을 막는 장벽으로 50m 간격으로 높이 3m, 길이 20m 장벽을 세웠다. 시멘트나 나무로 만든 기둥에 지름 15㎝ 안팎의 낙엽송을 철사로 촘촘하게 엮은 장벽을 만들어 1차로 바람을 막았다. 조림지에 세운 장벽 길이는 총 4.8㎞에 이른다.
모래나 다름없는 토양을 대신해 양질의 논흙을 산으로 옮겨 뿌리고 묘목을 심었다. 당시 산 위로 옮긴 흙은 90t이 넘는다. 당시 주민들은 지게를 짊어지고 직접 흙을 옮겼다. 불가능한 일을 해냈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특수조림지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74년부터 1986년까지 3차에 걸쳐 311㏊에 84만 3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현재 대관령 특수조림지는 인공조림지 311㏊와 천연림 307㏊ 등 618㏊ 규모로 임목축적은 190m³에 달한다. 이는 2022년 기준 전국 산림 평균 172m³보다 높은 수준이다. 임목축적은 1ha에 있는 굵기 8㎝ 이상 나무의 밀집도를 뜻한다.
강원 평창 대관령에서 1976년에 시행됐던 특수조림 사업지 전경. (사진=동부지방산림청)
대관령 특수조림지는 최악의 기상 여건에 도전해서 얻어낸 소중한 숲으로 생태·학술적 가치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한 환경에서의 특수조림 방식은 백두대간 복원에도 활용됐다.
2017년 해발 1000m가 넘는 대관령면 횡계리에 있는 목장용지를 산림으로 바꿀 때 바람을 막는 울타리와 묘목을 보호하는 대나무 통발을 만들어 소나무 등 나무 9000그루 정도를 심었다.
박군서 대관령숲길 안내센터장은 “1970년대 당시 전나무와 잣나무, 독일가문비, 낙엽송 등을 조림한 뒤 통발 지주목 등을 설치해 묘목이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했다. 묘목 사이사이에는 오리나무를 심었다”면서 “현재는 국민의 숲, 유아숲체험, 등산로 등으로 활용되면서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세계 128개국에서 해당 국가의 산림 공무원, 산림조합, 산림교육원 등 관계자들이 특수조림에 대한 견학을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원 평창 대관령에서 1977년에 시행됐던 특수조림 사업지 전경. (사진=동부지방산림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