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가 끝나가는 이유[생생확대경]

경제

이데일리,

2026년 7월 30일, 오전 05:01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하의치한약수(하이닉스·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삼멘·하멘(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식 아멘), 실리콘칼라(AI시대 고소득 전문직)…’

요즘 대한민국은 온통 삼전닉스에 빠져 있다. 전국민적인 주식 광풍은 물론이고, 대입·취업시장에서도 ‘반도체 원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입을 준비하는 최상위권 이과생들의 최우선 선택지로 반도체 연계학과가 급부상하고, 대학생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도 역시나 이들 반도체 기업이 손꼽힌다.

‘10년치 연봉이 1년 성과급’이라는 소문에 취업준비생들은 졸업을 미루고, 2~3년 더 백수로 생활을 하더라도 다른 회사를 지원하지 않고 이른바 삼전·하닉고시를 준비한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가 초호황기를 맞은 현 시점에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웃픈 자화상이다. 근래까지 취업시장에서 자주 들리던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인문계열 출신의 푸념 섞인 자조가 이제 더는 농담으로도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래픽=챗GPT 제공.
그래픽=챗GPT 제공.
하지만 AI 시대에 기업이 정말 원하는 인재는 무엇일까. 최근 효성그룹이 1966년 창사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문과생만을 뽑는 신입 공채에 나서 큰 화제가 됐다. 주요 사업 구조가 소재·화학·전력기기 등 제조업에 국한되는데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의 큰 수혜를 받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에서 더 의아스럽긴 했다. 그 배경은 “기술이 인문학과 결합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조현준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조 회장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AI 기술이 언어 장벽을 낮출 수는 있지만 해외 고객과의 신뢰를 형성하고 문화적 맥락과 숨은 요구를 파악하는 일은 사람의 역할”이라며 해외 현장 경험을 강조해 왔다고 한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븐 잡스는 2011년 아이패드 2를 공개하며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이 인문학, 인간에 대한 이해와 만날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그로부터 15여년이 지난 현재도 그의 통찰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 AI시대를 이끄는 핵심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금 시대에 중요한 인재상은 특정 분야만 깊게 아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라며 인재 혁신론을 제시했다. 앞으로 시대에는 인간과 AI를 연결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는 역량이 중요한 만큼 ‘AI 인재는 단순히 공대생만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시대와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던진 화두는 결국 기술과 사람을 모두 이해하고, 데이터를 읽으면서 이를 활용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인재라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산업화 시대의 경쟁력이 기술과 지식이었다면 이젠 판단력과 통찰, 협업이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대에 기업은 스펙과 전공보다는 기술과 사람, 데이터와 전략을 연결하는 사고력이 살아있는 조직을 키우고, 정부와 대학은 칸막이 교육보다는 교육체계를 확 바꾸는 융합 교육을 육성해야 한다. 청년 스스로도 눈앞의 연봉보다는 AI와 함께 본인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AI는 앞으로 수년 내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더 많은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바꾸는 것은 언제나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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