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성공의 열쇠는 '규제 네거티브제'[안종범의 나라살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7월 30일, 오전 05:13

안종범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대한민국 지방발전의 지도에 거대한 첨단산업 축이 그려지고 있다. 호남권에서는 광주 군공항 이전부지를 중심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을 유치하고 교육·주거·교통·인재 양성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지원하는 ‘호남권 반도체 메가특구’ 구상이 추진되고 있다. 영남권도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을 결합한 ‘피지컬 AI 및 휴머노이드 거점 클러스터’ 구축에 나섰다. 구미의 기존 기계·전자·반도체 부품산업 기반을 지능형 로봇 제조 생태계로 전환해 미래 제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과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이 각각 핵심 과제로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번 호남과 영남의 발전 구상은 좌우 대칭의 ‘쌍둥이 프로젝트’라 할 만하다.

그러나 화려한 투자계획과 정부의 지원 약속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보이지 않는 규제의 벽’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짓는 기업은 발표보다 현실을 본다. 부지를 확보해 첫 삽을 뜨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지, 거쳐야 할 인허가 창구가 몇 개인지, 전력과 용수를 제때 공급받을 수 있는지부터 따진다. 중앙정부가 규제를 완화해도 지방 조례가 다시 길을 막지는 않는지, 담당 공무원의 적극 행정 여부도 투자 결정을 좌우한다. 결국 지방 발전의 성패는 지원 예산을 얼마나 많이 배정했느냐보다 기업이 얼마나 신속하고 예측 가능하게 투자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역대 정부는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정부마다 명칭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재정·세제 지원은 확대됐으나 기업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규제는 충분히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원만으로는 여러 법령과 조례에 얽힌 다층적인 규제 장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규제개혁에는 일종의 ‘5년 주기 사이클’이 반복돼 왔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강력한 규제개혁 구호를 내걸었지만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부처의 저항과 이해집단의 반발, 국회의 입법 지연에 막혀 개혁 동력이 떨어졌다. 정권 초기에 규제개혁을 외치고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존 규제 체계로 회귀하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개혁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규제의 법적 원칙’과 ‘규제정보 인프라’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 첫째, 지방 첨단산업 특구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규제 네거티브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체계에서는 법에 허용된 행위만 가능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업은 허용 조항부터 찾아야 하고 관련 규정이 없으면 유권해석이나 법 개정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 기술과 시장은 빠르게 변하는데 법과 제도는 그 뒤를 따라가는 구조다.

이 점에서 2016년의 ‘규제프리존특별법’ 철학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 27개 전략산업을 선정했다. 광주는 친환경자동차와 스마트가전, 대구는 자율주행자동차와 웰니스, 전남은 에너지 신산업과 무인기, 경북은 스마트기기와 타이타늄을 전략산업으로 정했다. 기존 산업 기반과 기업 생태계에 맞춰 특화 분야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는 시도였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지역과 전략산업을 기준으로 입지·토지이용·환경 등 관련 규제를 묶어서 해소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지향했다. 개별 사업자가 규제특례를 하나씩 신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 지역과 산업에 대해 기업 활동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필요한 금지사항만 예외적으로 두자는 접근이었다.

이제 영호남 첨단 클러스터를 계기로 규제프리존의 철학을 복원해야 한다. 특별법에 규제면제 사항을 하나씩 열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안전·생명 등 필수 금지사항만 명확히 정하고 그 밖의 활동은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입지와 공장 설립뿐 아니라 투자구조, 연구개발, 인력 운용, 자금 조달과 사업화까지 포괄적으로 규제의 원칙을 ‘네거티브제’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규제정보포털’을 ‘중앙·지방 규제 매칭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기업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의 상당수는 중앙정부 법률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칙, 인허가 관행에서 발생한다. 중앙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규제를 완화해도 지방자치단체가 위임조례를 고치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법령에는 없는 서류를 요구하거나 위원회 심의를 반복하고 감사를 걱정해 결정을 미루는 ‘그림자 규제’도 적지 않다.

현재 규제정보포털은 규제 공개와 개선 건의 접수에만 치중해 특정 지역에 공장을 지을 때 적용할 중앙 법령과 지방 조례, 인허가 절차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투자 결정을 위한 ‘규제 경로지도’는 없는 셈이다. 앞으로는 기업이 업종과 투자지역, 공장 규모를 입력하면 필요한 인허가와 담당 기관, 법정 처리기한, 관련 중앙 법령과 지방 조례를 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각 단계의 신청과 진행 상황은 물론 추가 요구 서류와 지연 사유까지 추적할 수 있는 ‘원스톱 규제 정보 플랫폼’으로 바꿔야 한다.

이와 함께 2016년 이후 중단된 대한상공회의소의 ‘전국규제지도’를 고도화해 부활할 필요가 있다. 전국규제지도는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기업이 체감하는 행정서비스와 조례상 경제활동 친화성을 조사해 등급으로 공개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2015년 4월 기준 경제활동 친화성 우수 등급 지자체가 68곳에서 100곳으로 늘었다. 6개 지자체가 계획관리지역의 공장 설립 제한을 폐지했고 15곳은 다가구주택 입지 제한을 없앴으며 22곳은 경사도 기준을 완화하거나 용적률을 상향했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별 규제 수준과 성과가 공개되자 지방정부가 스스로 규제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재정지원보다 투명한 평가와 경쟁이 더 강력한 규제 혁신을 만들어낸 사례다.

다가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법을 비롯한 관련 입법이 단순한 지역별 나눠주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에도 특별법과 세제 혜택, 기반 시설 지원에만 머문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규제 네거티브제를 도입하고 중앙과 지방의 규제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며 전국규제지도를 통해 지방정부 간 경쟁을 촉진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지방은 더이상 중앙정부의 지원을 기다리는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돼야 한다. 호남 반도체와 영남 피지컬 AI의 성공 여부는 투자계획을 얼마나 크게 발표했느냐가 아니라 첫 번째 공장을 얼마나 빨리 착공하고 가동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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