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의 모습. 2026.6.11 © 뉴스1 최지환 기자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동일인'(총수) 예외조항 폐지를 시사하면서, 동일인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간 기업들은 동일인 제도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예외 조항까지 재조정하는 방안을 거론함에 따라 규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겼다.
동일인 예외조항, 도입 2년 만에 개정될 듯…폐지 가능성도
30일 업계에 따르면 주 위원장은 2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공정거래법의 동일인 지정 예외 조항을 담은 시행령과 관련해 "시행령이 악용되는 면도 있고, 동일인의 특수관계인이 경영에 참여하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시행령은 개정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앞서 공정위는 2024년 5월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자연인(개인)이 아닌 법인이나 단체도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게 하는 세부 요건을 담은 것이 핵심이었다.
다만 조건은 까다롭다. 기업집단 범위에 차이가 없고 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경영참여, 출자, 자금거래 관계 등이 단절돼 있는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구체적인 요건은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국내 계열회사의 범위가 동일한 기업집단의 경우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음 △자연인의 친족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음 △자연인의 친족이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아야 함 △해당 자연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회사 간 채무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어야 함 등이다.
하지만 주 위원장의 발언에 따라 예외 조항은 2년 만에 개정될 전망이다. 상황에 따라 조항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예외 요건을 모두 충족해 공정위가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기업집단은 두나무가 유일하다.
28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송경희(앞줄 왼쪽부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채이배 국무총리비서실장, 임기근 국무조정실장,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정일연 국민권익위원장이 출석해 있다. 2026.7.28 © 뉴스1 김도우 기자
정부, 사실상 쿠팡 겨냥…한미 갈등 심화 전망
업계에서는 이번 주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상 쿠팡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공정위는 2024년 쿠팡의 동일인을 쿠팡 법인으로 지정했다. 개정 시행령의 예외 요건을 모두 충족한 것으로 본 셈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난해 5월 쿠팡의 동일인(총수)을 기존 법인에서 김범석 쿠팡Inc 의장으로 변경했다.
당시 공정위는 김유석 부사장의 급여나 활동 반경을 고려했을 때 총수 일가인 김 부사장이 실질적으로 쿠팡의 경영에 참여해 예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김 부사장은 김 의장의 동생이다.
이후 쿠팡은 동일인 지정 처분 취소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서울고법은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하고, 김 의장을 쿠팡 동일인으로 변경 지정한 처분과 김 의장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 처분의 효력을 정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 위원장은 '악용' 사례로 사실상 쿠팡을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다시 관련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규제를 강화할 경우 쿠팡을 중심으로 한 한미 긴장 관계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 하원 법사위는 지난 1일 보고서에서 "(공정위가) 기업이 조사 근거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를 주지 않고, 매우 미약한 증거에 기반해 조사를 개시해 적법한 절차를 정기적으로 위반하고 있다"며 "대부분 경쟁법 집행 기관과 달리, 공정위는 거의 모든 규제 위반에 대해 형사 고발 권한이 있고, 지난 몇 년간 이를 적극적으로 행사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28일 서울시내 한 쿠팡 물류센터에 배송트럭이 주차돼있다. 2025.12.28 © 뉴스1 황기선 기자
재계, 동일인 제재 완화 일관 주장…"규제 강화는 시대착오적"
그간 기업들은 동일인의 예외 조항이 아닌, 동일인 지정제도 자체를 이른바 '갈라파고스 규제'로 보고 완화를 주장해 왔다. 해당 법은 1986년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오늘날의 경제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동일인은 공정위에 각종 자료를 제출해야 할 의무를 진다. 만약 해당 의무를 위반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검찰 고발도 가능하다.
그러나 기업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기업 총수라도 특수관계인의 개인적 투자내역을 모두 보고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형사처벌 하는 것은 과도한 제재라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특히 한국의 주요 기업이 3~4대로 넘어가면서 총수 일가가 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늘어나는데, 이들이 자료 제출 요구를 거절하는 실무적 어려움도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우선 지주회사 등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준에 맞춰 동일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일관된 요구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그간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형사처벌 조항을 경제적 제재로 바꿔 달라고 정부에 건의해 왔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규제 강화 기조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iro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