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2026.7.31 © 뉴스1 최지환 기자
지난달 초 1560원대까지 치솟았던 달러·원 환율이 한 달 새 1400원대 초중반까지 7%가량 빠르게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원화 강세가 계속될 수 있으나, 이 같은 하락세를 구조적 흐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내국인 해외투자 확대 등 환율을 끌어올리는 힘은 오히려 굳어지고 있어, 과거처럼 1200~1300원대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깜짝 성장과 기업 환전이 내린 환율…"이달 1400원 초 안정"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지난 31일 주간장에서 1420원대 초반까지 밀리며 주간 종가 기준 1424.0원을 기록, 지난 1월 28일(1422.5원) 이후 약 6개월 만에 최저치를 썼다. 다만 이후 야간장에서는 미국의 이란 폭격 예고 등에 급등락을 거듭했고, 1일에는 1435.5원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 1500원을 훌쩍 넘기기도 했던 환율이 최근 급락한 결정적인 원인은 한국 경제의 강한 성장세와 외환 시장 내 달러 수급 개선 등이 꼽힌다.
특히 지난달 발표된 2분기 경제성장률(전기 대비 0.6%)이 예상을 웃돈 점과 비슷한 시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미 금리차가 줄어든 점이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탰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 SK하이닉스 나스닥 상장에 따른 주식예탁증서(ADR) 관련 자금 유입, 일부 조선사 등 국내 수출 기업의 환전도 달러 공급 확대로 이어졌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단기적으로는 비슷한 흐름이 계속된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국제유가 반락으로 조만간 미국 내 물가 둔화가 예상된다. 이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우려가 누그러지고 환율 상승 기대가 약해지면서 국내 기업의 원화 환전은 지속될 수 있다.
여기에 8월 법인세 중간 납부를 위한 기업들의 원화 환전 수요까지 고려하면 환율 하향 안정화가 유력해진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환율은 단기적으로 14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영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달 환율의 주요 지지 구간은 1420~1440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하거나 미국 내 물가가 반등하면 연준의 매파 기조와 달러 강세가 재차 부각될 수 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가 확대될 경우에도 원화 강세는 주춤할 공산이 크다.
이젠 달러 벌어도 다시 국외로…'구조적 고환율' 전망
환율의 이 같은 단기 하락을 장기적인 원화 강세 흐름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분석이 많다.
사상 최대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내국인 해외투자가 활발해지고 기업의 달러 보유 수요도 강해지면서 환율을 내리는 힘이 구조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저출산·고령화는 내국인 해외투자를 확대해 환율 하락을 제약하는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노령 인구가 늘면서 노후 대비용 투자가 활발해지고, 이에 미국 주식 등 해외자산 매입이 증가하는 경우 달러 수요는 더욱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유미 연구원은 "내국인 해외투자가 계속되면서 발생하는 구조적 달러 수요는 환율 추가 하락을 제한하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사례 대입해 보니…"1200~1300원대 복귀 난망"
전문가들은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이 일본 엔화의 장기 절하 추세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앞서 일본은 경상수지 흑자가 내국인의 해외자산 축적으로 이어지면서 실질 엔화 가치가 낮아지는 궤적을 따랐다.
차영후 연구원은 "한국의 내국인 자금 유출은 지난 10년간 이어진 흐름으로, 일본이 20년 앞서 보여준 순대외자산 증가와 통화 가치 절하 경로를 뒤따르고 있다"며 "배경이 고령화와 경상수지 흑자라는 구조적 요인인 만큼, 대외자산 확대와 환율 상승은 오랜 기간 동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원화는 엔화보다 가치 하락이 다소 제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은 경상수지 흑자가 주로 해외투자에서 발생한 배당·이자 소득이었고 무역수지는 적자를 본 반면, 한국은 연달아 커다란 무역 흑자를 내면서 수출기업의 환전 수요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위변조대응센터 직원이 달러와 원화 지폐를 살펴보고 있다. 2025.4.17 © 뉴스1 김도우 기자
전문가들은 이에 한국과 같은 무역 흑자국인 독일·대만의 사례를 활용해 장기 환율 경로를 예측했다.
2010년대 후반 독일은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상품무역 흑자를 유지하면서 보험·연기금의 해외증권 투자와 기업 직접투자 등의 형태로 외화를 다시 국외로 내보냈다. 여기에 유로화가 공동 통화였던 탓에 독일만의 통화 절상 압력이 희석됐고, 실질실효환율이 횡보하는 가운데 순대외자산은 완만히 늘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이 같은 추세를 원화에 반영하면 달러·원 환율은 1430~1485원 구간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이 향후 독일이 아닌 대만의 경로를 따른다면, 환율 상단은 더 높아진다. 대만은 2000년부터 반도체 중심의 대규모 무역 흑자를 낸 동시에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 채권 투자 등으로 빠르게 유출했다.
최 연구원은 "이 경우 달러·원은 2030년까지 1500~1600원대의 높은 수준을 지속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이 두 시나리오 중 어느 쪽을 따르든, 과거보다 높은 환율이 계속된다는 결론은 같다"고 강조했다.
역대 최대 무역 흑자에도 환율이 과거 1200∼1300원대 수준으로 회귀하는 것은 현재 경제 구조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유미 연구원은 "환율의 추가 하락을 위해서는 반도체 중심의 성장 구조를 넘어 산업 전반으로 성장 동력이 확산하고 국내 자산의 기대수익률이 해외 자산보다 우위를 유지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최예찬 연구원은 "의미 있는 원화 가치의 절상은 무역 흑자의 크기가 아니라 외화 재유출의 속도가 꺾일 때, 즉 내·외국인 자금이 국내로 돌아올 유인이 생길 때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icef08@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