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나는 머릿결, 풍성한 숱…'눈에 보이는 효능'에 외국 바이어도 놀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05일, 오전 05:51

[이데일리 한전진 김지우 기자] “외국 바이어들이 가장 놀라는 대목이에요. 물이 크림으로 바뀌면서 따뜻해지고 흡착력이 올라가니까요. 경쟁사 제품은 이렇지 않죠.”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LG생활건강 제형연구실. 흰 가운을 입은 박수진 헤어뷰티연구팀 팀장이 젖은 모발을 담근 비커에 ‘닥터그루트 미라클 인샤워 트리트먼트’를 흘려 넣자, 투명한 액체가 순식간에 뿌연 크림으로 굳었다. 옆에 놓인 열화상 카메라 화면은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액상이 크림으로 바뀌는 ‘상(相)전환’과 열이 오르는 순간이다. 점도는 800배로 뛰고 크림은 모발에 밀착돼 흘러내리지 않았다. 글로벌 경쟁사 제품은 같은 조건에서 쭉 흘러내렸다.

체형연구실은 K뷰티의 다음 승부처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해외 바이어 등 외부에 기술력을 소개하는 곳으로, 최근 헤어케어 제품 시연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코스트코와 중국 샘스클럽 바이어들이 이곳을 다녀간 뒤 실제 입점 계약으로 이어졌다. 탈모 케어 브랜드 ‘닥터그루트’가 미국을 시작으로 캐나다와 멕시코까지 매대를 넓힌 출발점도 이곳이다. 스킨케어로 세계 시장을 연 K뷰티가 이제는 헤어케어에서도 기술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는 현장인 셈이다.

지난달 29일 LG생활건강 연구원이 서울 강서구 마곡 LG생활건강 제형연구실에서 '닥터그루트 미라클 인샤워 트리트먼트'의 상전환·발열 제형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액상 제형이 크림으로 변하며 모발에 밀착되는 모습을 열화상 카메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LG생활건강)
지난달 29일 LG생활건강 연구원이 서울 강서구 마곡 LG생활건강 제형연구실에서 '닥터그루트 미라클 인샤워 트리트먼트'의 상전환·발열 제형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액상 제형이 크림으로 변하며 모발에 밀착되는 모습을 열화상 카메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LG생활건강)


◇한류가 열고 기술이 굳힌다…3사 ‘헤어 수출 전쟁’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뷰티 3사(아모레퍼시픽(090430)·LG생활건강·애경산업(018250))가 샴푸 등 헤어케어를 차세대 수출 동력으로 키우는 경쟁에 고삐를 죄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3월 닥터그루트를 세포라 온라인몰에 입점시켰고, 6월 아마존 프라임데이 매출이 전년 대비 50% 이상 뛰었다. 이달부턴 미국 전역 세포라 400여개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한다. 아모레퍼시픽은 브라질 세포라 전점(45개)에 헤어 브랜드를 입점시켰고, 애경산업은 헤어케어 수출국을 32개국까지 넓혔다. 온라인에서 검증한 뒤 글로벌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K뷰티 공식’이 헤어케어에서도 이미 재현 중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생활건강 체형연구실에서 연구원이 두피 진단 장비로 헤어라인 부위의 두피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LG생활건강)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생활건강 체형연구실에서 연구원이 두피 진단 장비로 헤어라인 부위의 두피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LG생활건강)
한류가 K헤어케어 시장의 문을 열었다면 이제는 기술력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K팝과 K드라마를 통해 한국 아이돌과 배우의 윤기 있는 머릿결이 하나의 ‘뷰티 기준’으로 자리 잡으며 제품 수요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후광에 기대기보다 탈모와 두피, 손상 모발 관리 등 기능성을 앞세워 실력으로 시장을 넓히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경쟁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효능’이다. LG생활건강은 상전환·발열 제형 기술을 앞세운다. 바르는 순간 크림으로 변해 모발에 밀착되는 방식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인공지능(AI)과 분자모델링으로 8000여종의 성분을 분석해 모발 케라틴 강화 펩타이드 ‘Tripeptide-132’를 개발했다. 회사 측은 자체 실험에서 모발 인장강도가 최대 44%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애경산업은 탈모 완화 성분 ‘L-THP’ 특허를 확보해 국제화장품원료집(ICID)에 등록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차별화 기술 확보에 나서면서 헤어케어 경쟁도 이제 성분과 임상으로 승부하는 단계로 넘어간 셈이다.

특히 ‘한국인과 다른 모발’을 공략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각 업체들은 인종마다 제각각인 모질과 두피 환경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모발 텍스처를 12개 유형으로 나눈 기준을 토대로 미국 현지 연구소와 방한 외국인 품평단을 활용해 제품을 검증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히스패닉과 흑인 소비자가 많은 미국 시장을 겨냥해 열 시술로 손상된 모발을 집중 관리하는 ‘극손상 케어’와 향을 결합한 제품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한국 제품을 그대로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소비자의 모질과 생활환경에 맞춘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서울 성동구 올리브영N 성수 헤어케어존에서 외국인 고객들이 한국 헤어케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CJ올리브영)
서울 성동구 올리브영N 성수 헤어케어존에서 외국인 고객들이 한국 헤어케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CJ올리브영)
성장 여력은 충분하다. 두피를 피부처럼 관리하는 ‘스키니피케이션’, 손상 모발 구조를 복구하는 ‘본드 리페어’ 기술이 최근 각광받으면서다. 세라마이드 등 스킨케어 성분이 헤어 제품으로 옮겨오고 두피 앰플·토닉, 헤어 세럼 등 기능성 제품군도 빠르게 늘고 있다. 스킨케어에서 축적한 연구개발(R&D) 역량을 그대로 접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최대 격전지인 미국 헤어케어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193억달러에서 2030년 약 220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K헤어케어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있다. 김주덕 서울사이버대학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는 “최근 K뷰티 위상이 높아지며 품질과 기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며 “국내 기업들이 탈모 등 기능성 연구에 공을 들여온 만큼 유럽·북미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더 가팔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도전은 지금부터…해외 공룡·수출 장벽은 변수



다만 글로벌 시장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국만 해도 피앤지(P&G)와 로레알(L‘Oreal) 등 글로벌 기업이 월마트와 타깃 등 대형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케이에이틴(K18), 오유아이(OUAI) 등 손상모 복구를 앞세운 미국 프리미엄 브랜드도 임상과 효능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K헤어는 글로벌 대기업과 프리미엄 기능성 브랜드 사이에서 차별화된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동시에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비관세 장벽도 만만치 않다. 탈모·두피 케어의 효능 표현을 두고 국가마다 규제가 제각각인 점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탈모 증상 완화‘가 기능성화장품으로 인정되지만 미국에서는 일반의약품(OTC), 일본에서는 의약부외품, 중국에서는 특수화장품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비듬 개선을 내세운 제품도 OTC 규제 대상이 될 수 있고, 중국은 품목(SKU)마다 효능 평가를 요구한다. 여기에 2024년 시행된 미국의 화장품 규제 현대화법(MoCRA)으로 제조시설 등록과 안전성 자료 관리 의무가 더해졌다. 특히 자체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K헤어케어의 장기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주요 수출국 규제기관과 규제 기준을 맞추는 ’규제 조화‘, 즉 국가마다 다른 인증·효능 심사 기준을 조율해 중복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국가별 규제 개정 사항과 실무 대응 방안까지 제공하는 정보 플랫폼 구축, 해외 인증 비용 지원 확대, 규제 해석을 신속히 확인할 상담 창구 마련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주덕 교수는 “화장품은 규제 산업인 만큼 기업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식약처가 정부 대 정부로 나서 해외 규제당국과 기준을 조율해줘야 한다”며 “미국 모크라(MoCRA)나 중국·유럽 규제, 동남아 할랄 인증처럼 나라마다 문턱이 제각각인데, 우리가 인증해주는 만큼 상대국도 인정하도록 상호 조율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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