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에 라면이 진열된 모습. 2026.4.26 © 뉴스1 이호윤 기자
지난달 말 연일 내리쬐는 폭염에 동남아 대표 휴양지 베트남 냐짱(나트랑)을 찾았다. 부모님과 아이를 모시고 떠난 길이라 라면부터 생수, 과자, 소주까지 한국 식품을 바리바리 챙겼다. 낯선 땅에서 입맛 걱정을 덜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현지 롯데마트를 비롯한 각종 생필품 매장에서는 신라면과 삼다수, 고래밥, 참이슬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동남아 휴양지에서 마주한 '한국의 맛'은 반가움을 넘어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작은 에피소드지만 담긴 의미는 가볍지 않다. 대표적 내수 산업이던 식품이 어엿한 수출 역군으로 올라섰다는 방증이라서다.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15억 2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K푸드 수출은 9년 연속 늘며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현지 유통·물류 시스템과 입맛, 문화적 차이라는 벽을 넘어야 하는 식품의 특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성취다.
한국 식품이 현지 매장에 자리 잡았다는 건 가정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발성 소비를 넘어 꾸준한 수요가 뒷받침되어야 현지 판매 채널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K-컬처'의 저변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K-팝과 드라마로 형성된 한국에 대한 호감이 일상의 먹거리 소비로까지 스며든 셈이다.
식품산업의 무게는 실적에만 있지 않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식품산업은 제조·유통에서 약 90만 명, 외식에서 약 200만 명 등 300만 명에 육박하는 고용을 떠받친다. 대다수 식품기업의 영업이익률은 3~5%에 그치지만 고용 효과는 비교적 큰 셈이다.
후방산업 연계 효과도 크다. 각종 식자재를 가공·유통하는 산업 특성상 필연적으로 국내 농·축·수산업과 시너지가 날 수밖에 없다. 맥도날드가 2021년부터 지역 농가와 선보인 '한국의 맛' 시리즈는 617억 원 규모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증시에서도 재평가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농심의 주가는 최근 한 달간 5.8%, 삼양식품은 3.6% 올랐다. 반도체 대형주 약세로 같은 기간 코스피가 22% 넘게 하락한 것과 대비되는 흐름으로 경기방어주로서의 진가를 보여줬다.
원가 부담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하면서 판매량이 많은 주요 제품 가격은 동결했는데도 투자자들은 미래 전망을 높게 평가한 셈이다.
6월 방한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모어(more) HBM""을 외치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시민들에게 과자를 나눠줬다. 반도체를 본뜬 'HBM 칩스'였다. 첨단 기술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하는 데도 결국 '먹거리'가 동원된 것이다.
과자 한 봉지가 'HBM'을 실어 날랐듯 라면 한 봉수, 생수 한 병이 세계 곳곳에 한국을 전파하고 있다. 조용하지만 묵묵한 식품의 힘에도 눈길을 줄 때다.
ausur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