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역에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된 5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한 상인이 땀을 닦고 있다. 2026.8.5 © 뉴스1 최지환 기자
해마다 강해지는 폭염이 물가와 소비, 노동 현장을 동시에 흔드는 새로운 경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농축수산물 생산 차질로 먹거리 물가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냉방비 부담과 소비 이동, 노동생산성 저하까지 유발하면서 단순한 계절적 현상을 넘어 경제 전반의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 달 만에 2%대로 낮아졌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고온은 농축수산물 공급과 서비스 생산비를 다시 밀어 올릴 수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서도 극한고온 상황에서는 1년간 물가 상승 압력이 0.56%포인트(p)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 피해는 가격 지표에만 머물지 않는다. 냉방 여건에 따른 상권 양극화와 옥외·고강도 노동자의 온열질환, 생산성 저하까지 겹치면서 폭염을 일시적 기상 현상이 아닌 상시적인 경제 충격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월 열대야 역대 최다…극한고온 땐 1년간 물가압력 0.56%p
7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2.8% 올라 6월(3.2%)보다 상승 폭이 0.4%p 줄었다. 석유류 상승률이 24.7%에서 15.5%로 낮아지고 농산물 가격도 2.2% 하락한 영향이다.
다만 폭염에 취약한 먹거리 불안 요인은 크다. 축산물과 수산물은 각각 4.4%, 3.9% 올랐고 품목별로는 파가 18.3%, 달걀이 7.5%, 고등어가 7.0% 상승했다.
농축수산물의 생산 차질이 가공식품과 외식비 등으로 전이되면 폭염의 물가 영향이 수개월의 시차를 두고 나타날 수 있다. 재정경제부도 하반기 물가의 주요 변수로 폭염 등 이상기후에 따른 농축수산물 수급 불안을 꼽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기온은 26.8도로 평년보다 2.2도 높았다. 1973년 이후 1994년과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로 더운 7월이었다. 전국 폭염일수는 8.9일로 평년(4.1일)의 두 배를 넘었고, 열대야일수는 9.7일로 평년(2.8일)의 3.5배에 달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극한기상 현상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1도 고온 충격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미치는 영향은 24개월 이상 지속됐으며, 24개월 평균 상승 압력은 0.055%p였다.
충격이 강해질수록 영향은 비선형적으로 확대됐다. 일반적인 고온 충격이 발생했을 때 12개월간 물가 상승 압력은 0.03%p였지만, 충격 규모가 상위 5% 이상인 극한고온 상황에서는 0.56%p까지 커졌다.
기후 대응이 지연될 경우 고온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은 현재인 2025~2030년 0.32~0.51%p에서 2031~2050년 0.37~0.60%p, 2051~2100년에는 0.73~0.97%p로 확대될 것으로 추산됐다. 금세기 후반에는 현재의 두 배 수준까지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소비는 냉방 따라 이동…산재 취약계층 집중, 생산성 손실 물가로도 이어져
폭염은 소비 자체를 일률적으로 줄이기보다 소비 장소와 유통 경로를 바꾸는 모습이다. 냉방시설이 부족한 전통시장과 거리 상권에서는 유동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복합쇼핑몰과 온라인 장보기 등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소비 경로로 수요가 옮겨가는 식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에서는 지난달 가정 소비용 신선식품과 간편식 등의 판매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외출과 조리를 줄이려는 수요가 온라인 장보기와 가정간편식 등으로 이동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반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26년 7월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BSI)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소상공인 체감 BSI는 55.6으로 전월보다 8.0p 하락했다. 전통시장 체감 BSI도 50.5로 9.3p 떨어졌다.
전통시장의 판매실적과 구매 고객 수 지수는 한 달 새 각각 9.4p, 9.2p 하락했다. 8월 전망 BSI 역시 소상공인은 71.0으로 전월보다 6.3p, 전통시장은 66.5로 4.2p 낮아졌다.
조사는 지난달 18일부터 22일까지 전국 소상공인 업체 2400곳과 전통시장 점포 1300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대상자들은 경기 악화와 계절적 비수기, 매출 감소 등을 체감경기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장기간의 폭염이 야외 상권의 유동 인구 감소와 냉방비 부담을 가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 이후 골목상권의 하루 평균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0.6% 늘었다고 분석했지만, 폭염이 장기화하면 이 같은 경기 부양 효과가 일부 상쇄될 가능성도 있다.
남부지방에 극심한 폭염·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5일 경남 밀양시 무안면 일대에서 산림청 산불진화대원이 산불진화차량을 이용해 가뭄으로 농작물 피해가 우려되는 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2026.8.5 © 뉴스1 윤일지 기자
온열질환 산재 5년 새 25명→71명…생산성 손실 연평균 2651억 원
노동 현장의 충격은 건설업과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2025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산업재해자는 총 228명이다. 2021년 25명에서 2022년 29명, 2023년 33명, 2024년 70명, 지난해 71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건설업 종사자가 106명으로 전체의 46.5%를 차지했다. 제조업이 33명, 시설관리업이 23명으로 뒤를 이었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162명(71.0%)이 발생해 영세 사업장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폭염 피해는 산업재해에 그치지 않고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지난해 한국기후변화학회지에 실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등의 연구에 따르면 2016~2022년 국내 폭염에 따른 노동생산성 손실액은 연평균 2651억 원으로 추정됐다. 전체 임금 지급액의 0.18%에 해당한다.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한 2018년에는 손실액이 7616억 원까지 늘었다.
노동부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 작업할 경우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주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체감온도 35도 이상에서는 무더위 시간대 옥외작업 중지를, 38도 이상에서는 긴급조치 작업을 제외한 모든 옥외작업 중지를 권고하고 있다.
옥외 건설현장뿐 아니라 환기가 어려운 물류·택배 작업장도 관리 대상이다. 노동부는 작업 장소별 온도 측정과 냉방·환기설비 가동, 휴게시설 확보, 개인 보냉장구 지급 여부 등을 점검하고 있다. 이에 폭염이 산업안전 비용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폭염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광범위하다"며 "1차적으로 노동생산성 하락을 가져오는데, 특히 야외 노동은 직격탄을 맞는다. 건설 노동자는 물론이고 전기·전자제품 설치기사, 택배기사, 라이더 등이 폭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종별로 보면 농업과 수산업 등 1차 산업의 영향이 크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폭염은 여름 한철의 문제가 아니라 물가와 산업 활동 전반에 영향을 주는 구조적인 문제로,모든 부처가 기후를 주요 변수로 두고 정책과 예산을 전략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thisriver@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