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도 찍힌 여름…불과 연기로 '열기'를 그렸다[황덕현의 기후 한 편]

경제

뉴스1,

2026년 8월 08일, 오전 07:30

작가 토머스 레이 윌리스가 만든 '순환이 깨지지 않을까'(Will the Circle Be Unbroken) (출처: 미국 허드슨리버뮤지엄 홈페이지) © 뉴스1

경남 양산의 기온이 지난 2일 42.5도까지 올랐다. 1904년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한국에서 공식 관측된 가장 높은 기온이다. 절기상 '가을이 시작한다'는 입추(立秋·7일)에도 열기가 식질 않아 서울 노원구 등 곳곳에서 40도를 넘겼다. 전례 없는 폭염의 일상화(뉴노멀·New Normal)다.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6월부터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고 8월 들어 이탈리아 주요 도시에 최고 단계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일부 지역은 42도를 넘어섰다. 헝가리에서는 전력 부담을 줄이려고 국회의사당 등 주요 시설의 야간 조명을 껐고, 독일에서는 라인강 수위가 낮아져 선박 운송까지 차질을 빚었다. 폭염은 사람을 넘어 도시와 전력, 교통 체계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폭염은 어떻게 예술이 될까. 살인적 무더위에 '예술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죽을 것 같은 더위는 예술가들에게 오히려 시대를 기록할 가장 뜨거운 소재가 되기도 한다.

미국 뉴욕주 용커스의 허드슨리버미술관에서 1월까지 열렸던 기획전 '열(熱)의 미술'(DRAW: Heat) 전시도 그중 하나다. 작가 50명이 드로잉과 판화, 조각, 영상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열'을 그렸다.

붉은 태양이나 말라붙은 땅을 그린 기후변화 그림만 모은 것은 아니다. 폭염과 지구온난화뿐 아니라 더위에 더 취약한 사람들의 불평등, 정치적 긴장과 갈등, 뜨거운 감정까지 '열'이라는 단어에 집어넣었다. 작은 판화부터 대형 드로잉과 조각, 프로젝션까지 표현 방식도 달랐다.

그중 마운트세인트빈센트대(UMSV) 교수인 토머스 레이 윌리스(Thomas Ray Willis)는 연필이나 물감 대신 불과 연기로 그림을 만들었다.

6장의 그림을 묶어 하나의 작품이 되는 '순환이 깨지지 않을까'(Will the Circle Be Unbroken)는 맥주캔과 십자가, 총알 등 작가 가족의 집 안에 있던 물건을 태워 만들었다. 물건을 불에 그을린 뒤 화폭에 원형의 그을음을 남기고, 공간엔 페인트 테이프를 붙였다.

그을음은 윌리스 교수가 성장한 미국 네바다주 사막의 강한 햇볕과 실제 어머니의 집이 불탔던 기억을 반영한 것이다. 화재로 인한 빈곤과 중독, 회복의 기억을 화폭에 담은 것인데, 그는 불로 이미지를 태워 넣으면서 파괴 행위 자체를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바꿨다.

한반도를 덮친 42.5도, 그러나 쾌적한 실내에만 있는 이에게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그러나 42.5도는 어떤 이에게 야외 노동의 고통이고, 누군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냉방비이며, 산불이 번진 곳에서는 집과 일터를 삼키는 불이 된다.

콜롬비아계 예술가 후안 에르난데스 디아스(Juan Hernandez Diaz)의 작품 '화씨 2.7도'(2.7°F). (출처:미국 허드슨리버뮤지엄 홈페이지)

이 전시에 참여한 콜롬비아계 예술가 후안 에르난데스 디아스(Juan Hernandez Diaz)의 작품 '화씨 2.7도'(2.7°F)도 인상적이다.

온도 차로 환산하면 화씨 2.7도는 섭씨 1.5도다. 파리협정(2015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국제사회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 바로 그 숫자다. 여러 재료를 한데 엮은 형식의 작업을 통해 작가는 버려진 물건과 임시로 결합한 구조물을 통해 균형과 불안정, 붕괴 직전의 상태를 전시했다.

허드슨리버미술관은 '열의 미술' 전시와 같은 기간에 '폭염에 일격'(Throwing Shade on Extreme Heat) 전시도 함께 열었다. 여기에선 폭염을 그리는 대신 그늘을 그렸다. 폭염 취약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무를 심기 어려운 도심 공간을 찾고 실제 설치할 수 있는 그늘 구조물을 설계했다. 미술관에는 그 설계 과정과 모형을 전시하고 관람객도 자신에게 필요한 그늘을 직접 그려보도록 했다.

한쪽 전시장에서는 불로 종이를 태워 열의 흔적을 남겼고, 다른 쪽에서는 그 열을 피할 지붕을 그린 셈이다.

한국에서는 이제 42.5도가 관측됐다. 기록이 얼마나 더 높아질지를 지켜보는 일만으로 폭염에 대응할 수는 없다. 더위가 누구에게 더 많이 노출되는지, 도시 어디에 나무와 그늘이 부족한지, 냉방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허드슨리버미술관의 두 기획전은 결국 높은 온도 그 자체보다 그 온도 아래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조명하고 있다.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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