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자산 허브 꿈꾼다면 과세로 발목 잡지 말아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11일, 오전 12:34

[이데일리 정윤영 기자] “대한민국을 디지털자산 허브로 만들겠다” 이 슬로건은 다름 아닌 현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이다. 당시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역대 민주당 대선 공약 가운데서도 가장 적극적인 수준의 블록체인·디지털자산 육성 정책을 제시했다.

김남웅 포필러스 대표 (사진=포필러스)
김남웅 포필러스 대표 (사진=포필러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디지털자산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비전과 함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디지털자산 제도 정비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집권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 업계가 체감하는 현실은 대선 당시의 기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재 시장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정책적 불확실성이며, 다른 하나는 디지털 자산 과세다. 필자 역시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조세 원칙 자체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과세의 필요 여부가 아니라 시기와 정책의 일관성이다. 대한민국을 디지털자산 허브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정부가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는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채 과세부터 추진하는 현재의 접근은, 정책 방향 측면에서 다소 모순적으로 보인다.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부의 개입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다시 더 많은 정부의 개입을 부른다.”

필자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상장기업과 기관투자자의 디지털자산 시장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기업들이 거래소 실명계좌를 개설하고 디지털자산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면서, 블록체인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정부가 상장기업이 어떤 범위까지 디지털자산을 취득하고 보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업의 시장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정책 기조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향성은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하면서 디지털자산소득 과세는 시행하려는 현재의 정책과 일정 부분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상장기업들이 합법적으로 디지털자산을 취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고 가정해 보자. 기업들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자산을 재무전략의 일부로 보유하거나 사업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투자 유인이다. 현재와 같이 디지털자산 투자에는 과세가 이루어지고, 상장주식의 양도차익에는 금융투자소득세가 존재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투자자들이 직접 거래소에서 디지털자산을 매수하기보다 디지털자산을 대규모로 보유한 상장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는 방식을 선택할 유인이 생긴다. 다시 말해, 직접적인 디지털자산 익스포저 대신 주식을 통한 간접적인 디지털자산 익스포저를 선택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세제 아래에서는 직접 디지털자산에 투자하는 것보다 미국의 스트래티지나 비트마인과 같은 국내 디지털자산 트레저리(DAT)의 주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편이 세제 측면에서 더 유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디지털자산 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기업의 시장 참여를 허용했음에도, 오히려 투자자들은 거래소가 아닌 주식시장을 통해 디지털자산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게 될 수 있다.

이는 디지털자산소득 과세가 의도했던 정책 목적과는 다른 결과를 야기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정부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세제와 충돌하면서, 투자자들이 경제적 유인을 따라 우회 경로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세제 차이가 단순히 투자자의 선택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사이에 인위적인 세제 차익이 생기면, 자본은 경제적 실질보다 세후수익률이 유리한 경로로 이동하게 된다. 결국 세제가 시장의 자산배분 자체를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이 현실화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는 결국 또 다른 규제를 통해 이를 보완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DAT 설립이나 운영을 제한하거나, 법인과 기관의 디지털자산 취득 범위를 더욱 엄격하게 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DAT만 규제한다고 해서 이러한 현상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벨리데이터 사업이다. 벨리데이터는 디지털자산 네트워크를 검증하고 그 대가로 해당 네트워크의 디지털자산을 보상받는 사업이다. 동일한 수준의 보상을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해당 디지털자산의 가격 상승은 원화 기준 매출과 수익성에 직접적인 상방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으로 디지털자산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디지털자산 수탁(커스터디)업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온체인 금융 인프라 기업 등 디지털자산 시장의 성장에 따라 기업가치가 함께 증가하는 기업은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이러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일반 지주회사나 투자회사 역시 결과적으로는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간접적인 익스포저를 제공하게 된다.

그렇다면 규제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대돼야 하는가. 디지털자산을 직접 보유한 기업만 규제할 것인가. 디지털자산 관련 기업도 규제할 것인가. 디지털자산 관련 기업에 투자한 기업까지 규제할 것인가.

결국 처음의 정책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예외를 만들고, 더 많은 규제를 도입하며, 더 많은 시장 개입을 반복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말한 것처럼, 하나의 정부 개입이 또 다른 정부 개입을 낳는 전형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이러한 방향은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쉽게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와 조화를 이루는 일관된 과세 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아닐까.

디지털자산 산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필자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특혜가 아니다. 정책의 일관성이다. 일관성을 잃은 정책은 산업을 성장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시장 참여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기업의 투자 결정을 지연시키며, 결국 자본과 인재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해외로 이동하게 만든다.

단순히 디지털자산 과세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세 역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정책이다. 다만 그 과세가 산업 육성이라는 국가적 목표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디지털자산 허브를 지향한다면, 이제는 단기적인 정책 대응을 넘어 장기적인 산업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규제당국과 산업 종사자들이 선입견이나 성역 없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정책은 선거를 위한 구호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디지털자산 허브가 되겠다는 약속 역시 일회성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결정할 국가 전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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