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이자도 재조정도 없다”…현대건설 ‘배짱 CB’에 물린 투자자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11일, 오전 05:47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현대건설(000720)이 이자 없이 조달한 50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두고 투자자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현대건설 주가가 전환가액을 밑돌면서 투자자들이 실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를 활용해 생성한 인포그래픽.
생성형 인공지능(AI)를 활용해 생성한 인포그래픽.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 11만700원으로 지난 6월 발행을 결의하고 7월 7일 납입을 완료한 CB의 전환가액 15만607원보다 26.5%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해당 CB의 금리가 0%인 점과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오직 주가 반등 여부에만 수익을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만약 현대건설이 CB 대신 일반 회사채를 발행했다면 매년 200억원 안팎의 이자를 부담해야 했다. 현재 현대건설 신용등급(AA-)의 3년물 회사채 금리가 연 4%대 중반에 달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은 이자 한 푼 받지 못한 채 회사의 자금 조달 비용만 대신 짊어진 셈이 됐다.

현재로선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됐지만 불과 두 달 전 시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발행 결의 시점인 지난 6월만 해도 코스피 지수가 상승 가도를 달리며 증시 전반에 훈풍이 불었던 만큼 현대건설은 우량한 신용도를 앞세워 이처럼 발행사에 전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통상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주로 활용하는 CB를 신용등급 'AA-'의 대형 우량사가 꺼내 들면서 표면·만기금리 0%는 물론 리픽싱 조항과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마저 배제했다.

투자자에게 다소 깐깐한 조건임에도 NH투자증권(2000억원)과 한국투자증권(1500억원), 키움증권(1500억원)이 물량을 전량 인수한 이유다. 최근 증시가 변동성 확대 국면에 접어들면서 결론적으로는 투자자들이 모든 불리함을 떠안게 된 결과가 됐다는 평가다.

문제는 현대건설 주가 반등을 기대하기엔 재무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해외 사업을 공정 단계 달성 시 대금을 청구하는 마일스톤(Milestone) 방식으로 수주한 탓에 많은 현금이 운전자본에 묶인 상황이다. 이로 인해 대량의 미수금이 운전자본 형태로 묶이면서 매출 감소 속에서도 매출채권만 빠르게 쌓여 현금흐름이 크게 둔화했다.

실제 현대건설의 올해 1분기 말 평균매출채권은 5조4656억원으로 전년 말(4조3490억원)보다 25.7%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7조4556억원으로 전년 동기(8조5453억원) 대비 12.8% 감소했다. 건설사의 매출채권에는 공사미수금과 분양미수금 등이 포함된다.

이에 따른 매출채권회전율은 7.5회에서 5.5회로 낮아졌고, 회전일수는 48.6일에서 66.8일로 늘었다. 채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 반에서 두 달 이상으로 길어졌다는 뜻이다. 수익성 지표도 뒷걸음질 쳤다. 1분기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2416억원으로 전년 동기(2770억원) 대비 12.8% 줄었다.

현대건설이 정통 회사채가 아닌 CB 조달을 택한 배경에는 이처럼 가중되는 현금흐름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매출채권 증가로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매년 수백억 원의 이자를 내야 하는 것보다는, 조건부 무이자 조달이 훨씬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린 셈이다.

고금리 여파로 우량 기업들 사이에서 이자 부담을 피하려 CB 조달을 택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점도 한몫했다. 앞서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은 지난 3월 유사한 조건으로 5000억원 규모 CB를 발행한 바 있다. 단 2029년 3월부터 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 현대건설 대비 투자자 보호 수준은 높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도 비슷한 조건의 CB 발행을 추진하다 주가 급락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현대건설 관계자는 "지난달에 발행해 현재의 단기 주가 흐름만으로 투자 위험을 판단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다"며 "투자자는 향후 주가 상승 시 전환을 통한 차익을 기대할 수 있고, 전환하지 않을 경우 만기에 원금을 상환받는 구조인 만큼 현재 주가만으로 투자 리스크가 확대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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