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식히고 물은 데우고"…제주서 선보인 삼성의 '난방 공식'[르포]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11일, 오후 02:02

[제주=이데일리 송재민 기자] “이 좋은 걸 왜 안 해요.” 실증이 끝난 뒤에도 계속 사용하겠느냐는 질문에 제주시 도남동에서 34년째 살고 있는 양창희(74)씨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양씨 집 마당에 새로 들어선 것은 삼성전자의 히트펌프 냉난방 시스템 ‘EHS 올인원’이다. 건축 기술자 출신인 그가 최근 가장 반긴 변화는 “보일러 기름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 지하 탱크를 들여다보던 일”이 사라진 것이다.

제주 도남동 지역 내 고객이 삼성전자 'EHS 올인원'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주 도남동 지역 내 고객이 삼성전자 'EHS 올인원'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30분 거리 애월읍에서 만난 김은애(54)씨도 히트펌프를 반겼다. 김씨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LPG나 기름을 땔 수밖에 없는데, 8가구뿐인 동네여서 단가도 비싸다”며 “겨울에는 전기와 보일러 비용을 합쳐 월 20만원 가까이 나왔다”고 말했다. 도청 공고를 본 남편이 신청 첫날 접수해 ‘1호 가구’로 선정됐다는 그는 “우리 형편에 딱 맞는 사업”이라고 했다.

두 집 마당에는 에어컨 실외기처럼 생긴 낯선 상자가 놓여 있었다. 공기 중의 열을 활용해 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의 히트펌프다. 원리는 에어컨과 비슷하다. 외부 공기의 열을 냉매로 흡수한 뒤 이 열로 물을 데워 바닥 난방과 온수에 활용한다. 연료를 직접 태우지 않고 외부의 열을 실내로 옮기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두 집에 서로 다른 히트펌프를 시범 설치했다. 양씨 집은 ‘히트펌프 필드 테스트 랩’으로 꾸미고 냉방·난방·급탕을 하나의 실외기로 처리하는 EHS 올인원을 실증하고 있다. 냉방 과정에서 실외로 배출되는 열을 회수해 온수를 만드는 제품이다. 대형 상업시설에 쓰이던 열 회수 기술을 주거용으로 소형화했다. 기존 R410A보다 지구온난화지수가 약 68% 낮은 R32 냉매도 적용했다. 김씨 집에는 난방과 급탕에 특화한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국내 최초로 설치했다.

10일 제주시 도남동 히트펌프 실증주택에서 삼성전자 EHS 올인원의 냉난방 성능과 에너지 사용량 등 운전 데이터가 모니터링되고 있다. (사진=송재민 기자)
10일 제주시 도남동 히트펌프 실증주택에서 삼성전자 EHS 올인원의 냉난방 성능과 에너지 사용량 등 운전 데이터가 모니터링되고 있다. (사진=송재민 기자)
양씨 집의 실외기 한 대에는 주방과 안방, 2층 거실과 안방의 벽걸이 에어컨 4대가 연결돼 있었다. 주방 수도꼭지를 틀고 잠시 기다리자 따뜻한 물이 흘러나왔다. 같은 장치가 욕실과 주방에 온수를 보내면서 1·2층 바닥 난방까지 맡는다. 에어컨과 보일러 설비를 각각 둘 필요가 없어 공간 활용성도 높였다.

김씨 집은 냉방 없이 난방·급탕에 집중한 축열식 모델이다. 300리터 물탱크를 최고 70도까지 데워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외부 온도가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도 정격 난방 성능을 유지한다는 게 삼성전자 설명이다. 35도 출수 조건에서 계절성능계수(SCOP)는 4.9로 정부 효율 가이드라인인 4.5를 웃돈다. 소비 전력 대비 약 5배의 난방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의미다. 소음도 최저 35㏈ 수준으로 압축기가 돌아갈 때도 대화에 지장이 없었다.

두 집 모두 7인치 터치스크린과 스마트싱스 앱으로 온도와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다. 양씨는 “70대 노인인 나도 이걸 볼 줄 알아야 하나 싶었는데 온도만 맞추면 알아서 다 해준다”며 휴대전화 화면을 들어 보였다.

10일 제주시 도남동 삼성전자 ‘히트펌프 필드 테스트 랩’에서 집주인 양모씨가 스마트싱스 앱을 이용해 EHS 올인원에 연결된 에어컨의 작동 상태와 실내 온도 등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송재민 기자)
10일 제주시 도남동 삼성전자 ‘히트펌프 필드 테스트 랩’에서 집주인 양모씨가 스마트싱스 앱을 이용해 EHS 올인원에 연결된 에어컨의 작동 상태와 실내 온도 등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송재민 기자)
제주가 첫 실증지로 낙점된 데는 도시가스 보급률이 낮아 LPG·등유 의존도가 높은 데다 온화한 기후로 공기열 히트펌프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많아 낮 시간대 남는 전력을 활용하기에도 유리하다. 양씨 집에서는 잉여 태양광 전력으로 히트펌프를 가동해 열을 저장했다가 밤에 쓰는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실증 초기지만 지난달 양씨 집의 전기요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만5000원 줄었다. 충주의 30평대 단독주택 실증 현장에서는 월 49만원이던 난방비가 20만원 안팎으로 절반 이상 감소한 사례도 나왔다. 삼성전자 측은 기존 연료식 보일러와 비교하면 통상 50% 안팎의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겨울철 월 20만원 가까이 지출했던 김씨 집도 난방비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김씨 집은 지난 6월 말 제품을 설치해 현재 온수 위주로 사용하고 있어 실제 절감률은 확인되지 않았다. 주택의 단열 구조와 이용 습관, 외부 기온 등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만큼 난방 수요가 본격화하는 겨울철 운전 데이터를 지켜봐야 한다.

제주 애월 지역 내 고객이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주 애월 지역 내 고객이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보급 확대의 가장 큰 문턱은 초기 설치비와 전기요금이다. 제주 난방 전기화 사업에서 히트펌프 보일러와 축열조 등을 합친 사업비는 가구당 약 1400만원이다. 정부와 제주도가 70%를 보조해 실제 소비자 부담은 약 400만원으로 낮아진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EHS 올인원은 실증 단계여서 전용 요금제 적용 여부도 남은 과제다. 양씨도 제품 만족도를 묻자 “설치비까지 고려하면 80점 정도”라며 “누진세 걱정이 덜어지면 90점, 정부 지원이 된다면 100점일 것”이라고 정부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제주 약 2500가구에 보조금을 지원해 히트펌프를 보급하고, 2035년까지 전국에 350만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제주에서 확보한 냉난방 성능과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토대로 EHS 올인원을 내년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다. 삼성물산 주거성능연구소에서 아파트 환경의 성능을 검증하고 있으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도 공동주택 적용 방안을 협의 중이다.

신문선 삼성전자 DA사업부 상무는 “제주는 국내 난방 전기화 정책이 가장 먼저 추진되는 지역인 만큼 히트펌프 기술과 제품 경쟁력을 실제 주거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테스트베드”라며 “앞으로 고효율 히트펌프 기술을 기반으로 냉방·난방·급탕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거용 HVAC 솔루션을 선보이며 국내 난방 전기화와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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