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외화자산을 굴리는 정희섭 외자운용원장은 “10대 외환보유액 국가들의 평균 금 보유 비중(시가 기준)은 21.3%인 반면, 우리나라는 3.5%에 불과하다”며 13년 만에 재개한 금 매입의 이유를 밝혔다. 2013년 2월을 마지막으로 금을 사지 않았던 한은은 최근 외환보유액 중 금 비율을 확대할 방침을 세웠다.
그간 한은이 금 매입에 소극적이었던 건 “‘금 트라우마’가 남아서”라는 말들이 많았다. 한은은 김중수 전 총재 시절인 2011~2013년 90톤의 금을 사들였는데 이후 금값이 하락하면서 평가 손실이 발생하자 국정감사 등에서 ‘금 투자 실패’로 질책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금값 급등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반대로 한은이 금을 사지 않는 건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국제 금값은 최근 한 달새 10% 넘게 올랐지만 상반기 고점에 비해선 하락해 있다. 정 원장은 “가격적인 면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저가 매수를 염두에 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정 원장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됐다는 점을 한은이 금 매입을 재개한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정 원장은 “지정학적 리스크 우려로 금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국가들과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며 “그러나 갈수록 세계가 ‘분절화’되고 있어 기존 국제금융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국가들에 비해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고 위험도 훨씬 작다고 볼 수 있으나 갈수록 세계가 ‘분절화’되는 상황이어서 기존 국제금융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외환보유액은 국가 경제의 최후 보루인 만큼 극단적 상황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희섭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 (사진=김국배 기자)
하지만 앞으로는 국내 금 생산업체에서 수출용 금을 사 영란은행이 아닌 국내에 보관하게 된다. 최근 글로벌 국가들 사이에서는 해외에 보관하던 금을 국내로 회수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는 뉴욕에 보관하던 금을 전량 매각한 뒤 유로 시장에서 재매수해 국내로 들여왔다. 독일도 런던에 보관하던 금을 본국으로 가져갔다. 지정학적 의존도를 낮추며 위기 상황에서 자산의 물리적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정 원장은 “해외에 보관 중인 금을 국내로 반입할 계획은 없다”며 “단지 국내 생산 금을 매입하면 지정학적 리스크(보관 장소)를 분산한다는 차원에서 국내에 보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생산 금 수출 예정 물량은 연간 5톤 내외로 많지는 않다”며 “국내 생산 금 매입은 원화로 금을 매입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고, 금 보관 장소를 분산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