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이미 중국판, 반도체 공급망도 새판짜기 속도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20일, 오전 12:01

[이데일리 김소연 김형욱 기자] “중국 베이징대의 한 교수가 집요하게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에 대해 질문을 하며 파고들었다. 매우 적극적이었다.”

국내 대표 반도체 석학으로 꼽히는 유회준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6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VLSI 심포지엄 학회에서 여러 중국 인사들을 만나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쏟아지는 질문부터 반도체 굴기에 대한 의지가 몸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중국이 이제는 (한국, 미국, 대만 등이 주도하고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겠다는 포지션을 잡았다고 느낀다”며 “이는 곧 중국이 메모리에서 따라올 날이 머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반도체업계 “中 발전속도 따라가기 어려워”

중국 산업계가 한국을 잇따라 추월한 가운데 그나마 마지막 보루로 꼽히는 이른바 ‘반·차·바’(반도체·자동차·바이오)마저 구조적인 도전에 직면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기술력, 시장, 공급망 모두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고 있어서다. 중국은 기존 경쟁 구도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건너뛰기’ ‘새판짜기 전략으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천문학적인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팹리스(설계전문)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메모리, 핵심 장비까지 생태계 전반을 동시에 키우며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모든 분야를 함께 추진하며 새판을 짜는 것은 반도체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렵다. 현재 미국(팹리스), 대만(파운드리·팹리스), 한국(메모리), 유럽(첨단장비·설계자산) 등은 특정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2년 D램 점유율이 1%대에 불과했던 창신메모리(CXMT)는 올해 1분기 7.6%까지 끌어올렸다. 어느덧 글로벌 4위까지 올랐다. 여러 기업들이 난립하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중국 굴기는 더 두드러진다. 양쯔메모리(YMTC)는 2022년 3%였던 시장 점유율을 올해 16.2%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글로벌 3위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중국 SMIC(5.1%)가 삼성전자(6.5%)를 바짝 뒤쫓고 있다. 반도체업계 고위관계자는 “가장 무서운 존재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했다.

중국의 추격은 인력과 기술 확보를 통해 속도를 더하고 있다. 국내 메모리 업계 종사자를 통해 D램 600여개 공정 기술을 통째로 빼돌린 사례도 있었다. 이를 통해 개발과 최적화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한 전례가 있는 만큼, 현재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에서 언제든 한국을 추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멕시코·브라질선 전기차 10대 중 8대 중국산



전기차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시장조사업체 EV볼륨스 등에 따르면 중국, 미국, 유럽 등 3대 시장을 제외한 제3시장에서 중국계 전기차 기업의 점유율은 올해 처음 50%를 돌파했다. 이는 중국 전기차가 더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이스라엘을 비롯해 싱가포르, 태국, 멕시코, 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중국계 전기차의 점유율이 80%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내연기관차 경쟁이 쉽지 않다는 판단 하에 곧바로 전기차로 건너뛰었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점차 잠식하고 있다.

중국은 해외 생산거점 마련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BYD와 창안, GWM 등은 중남미, 동남아에 이어 최근 유럽 공장까지 공격적인 현지 공장 건설·인수에 나섰다. 말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산업 영토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 산업도 중국의 추격을 피해가기 어렵다. 중국 AI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 메디슨은 올해 일라이릴리와 최대 27억5000만달러(약 3조8000억원) 규모의 연구·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선급금만 1억1500만달러에 달한다. 앞서 스템라인과 최대 5억5000만달러, 세르비에와 최대 8억88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공개된 주요 계약 3건의 최대 규모를 합치면 약 41억9000만달러에 이른다. JP모건에 따르면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맺은 대형 라이선스 계약에서 중국 개발 신약 자산이 차지한 선급금 비중은 2021년 4%에서 올해 상반기 68%로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다른 산업들의 전례와 마찬가지로 반·차·바 역시 중국과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반·차·바의 비중이 워낙 크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반도체의 올해 1분기 성장률 기여도는 55%에 달했다. 반도체 산업이 역대급 성장세를 이뤄내지 못했다면 성장률이 반토막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산업통상부 집계를 보면, 반·차·바의 올해 7월 수출 비중은 50%가 넘는다.

산업계 한 고위인사는 “반도체는 성장률, 자동차는 일자리, 바이오는 미래 먹거리 측면에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며 “중국 쓰나미가 몰려올수록 한국은 직접 영향권에 들 것”이라고 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