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대미 투자 프로젝트 및 한·미 통상 현안 협의를 마치고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이호윤 기자
한미 간 대(對)미 전략투자 1호 프로젝트 선정 협상이 9월을 사실상의 '데드라인'으로 두고 막판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애초 8월 말~9월 초 발표가 거론됐지만,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과의 협상 이후 "현실적으로 논의 과정과 절차를 고려하면 9월 중으로 하는 데 양국 간 이해가 있었다"고 밝히면서발표 시점은 9월 중으로 가닥이 잡혔다. 남은 쟁점을 놓고 한·미 간 막판 조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미국이 상호관세를 대체할 새로운 관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무역법 301조의 공급과잉 조사 결과 발표 시점도 8월 말~9월 초로 예상된다. 대미 투자 1호 사업과 301조 추가 관세라는 두 협상의 시계가 동시에 돌아가면서, 지난해 15%로 합의한 한미 관세 협상의 '2라운드'가 대미 투자 협상과 맞물리는 양상이다. 한국으로서는 투자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지와 301조 관세가 기존 합의선을 넘지 않도록 막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대미 투자 1호 놓고 한·미 시각차…"상당한 진전"에도 9월로 연기
23일 통상당국 등에 따르면 김 장관은 이번 방미 기간(16~19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이틀 연속 만나 대미 전략투자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쟁점을 조율했다. 귀국길에는 "실무자 간 해결되지 않은 쟁점들이 여러 개 있었고 장관급에서 단판을 짓자는 의견들이 오갔다"며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양측은 이번 주에도 화상회의를 이어가며 남은 쟁점을 조율할 예정이다.
하지만 김 장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협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애초 정부가 목표로 했던 '8월 말~9월 초' 발표에서 '9월 중'으로 시점이 조정된 데다, 어떤 사업을 1호 프로젝트로 선정할지를 놓고도 한·미 간 온도 차가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그동안 우선 검토해 온 분야는 에너지다. 미국의 전력 수요 확대와 한국 기업의 사업성을 함께 고려해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에너지 프로젝트를 첫 사업으로 선정한다는 구상이다. 김 장관도 귀국길에 "현재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지금 와서 다른 분야로 바꿔 일정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은 한국 반도체 기업의 현지 생산 확대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 왔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달 마이크론의 미국 생산시설 행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직접 거론하며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는 미국이 대미 투자 1호 사업으로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요구했다는 관측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김 장관 역시 이번 협상에서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설명은 한국 측의 협상 방향을 보여줄 뿐, 미국이 어떤 요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이어서 오히려 막판 쟁점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반도체 투자는)우리 프로그램은 아니고, 우리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패키지에 집중한다"며 반도체 투자는 미국이 별도로 요구하는 사안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결국 핵심은 미국이 요구하는 '미국 내 산업 경쟁력 강화'와 한국이 강조하는 '상업적 합리성'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다. 한국은 3500억 달러 패키지 가운데 조선 1500억 달러를 제외한 2000억 달러 규모 전략투자에서 수익성과 투자비 회수 가능성을 중시하고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내 생산과 고용, 공급망 강화라는 정책 목표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1호 프로젝트가 에너지 분야로 가닥을 잡더라도 미국이 어느 수준까지 세부 조건을 요구할지가 막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가 세워져 있는 모습.© 뉴스1 김성진 기자
301조 추가 관세도 9월…투자 협상 결과가 관세협상 지렛대로?
문제는 대미 투자 협상의 시계와 301조 관세 협상의 시계가 공교롭게 겹쳤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 3월 한국을 포함한 16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구조적 공급과잉 및 과잉생산 문제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시작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철강·알루미늄을 비롯해 반도체·배터리·화학·자동차 등 광범위한 제조업을 조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앞서 미국은 강제노동 관련 301조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산 제품에 12.5%의 관세를 적용한 상태다. 여기에 공급과잉 301조 조사 결과에 따른 추가 관세가 붙을 경우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15% 상한을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한국 정부 안팎에서 제기돼 왔다.
김 장관은 이번 방미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와 만나 15% 상한선에 대한 양국 간 이해가 있었다고 밝혔다. 발표 시점은 "머지않은 시간"으로, 애초 양측이 논의한 시점을 고려하면 8월 말~9월 초쯤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장관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고 계속 챙겨나갈 예정"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301조 관세는 법적으로 '공급과잉'이라는 별도의 조사에 따른 조치다. 따라서 대미 투자 협상과 관세 부과를 직접 연계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투자·산업정책을 하나의 협상 공간에서 다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 협상의 진전 여부가 301조 관세 협상에서 미국의 협상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렵다.
실제 미국은 이미 301조를 활용해 기존 관세 체계를 대체·보완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한국 정부도 301조 관세가 기존 한·미 합의의 실질적인 균형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 대미 투자 이행을 둘러싼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만도 표면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한·미 연합훈련 축소 결정과 관련해 미국 측이 한국의 3500억달러 투자 이행 속도 등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결국 9월은 한국에 두 개의 협상 결과가 동시에 윤곽을 드러내는 시점이 될 전망이다.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를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구체화하면서도 국내 산업과 투자사업의 수익성을 지켜야 하고, 동시에 301조 공급과잉 관세가 기존 15% 합의선을 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특히 대미 투자 협상이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진전되지 않을 경우 301조 관세 협상에서 한국의 협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안은 사실상 별개의 협상으로만 보기 어려워졌다.
한국 정부로서는 '투자와 관세는 별개'라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두 협상에서 미국의 압박 수단이 연결되는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셈이다. 김 장관이 이번 방미를 마치고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을 강조하면서도 최종 발표 시점을 9월로 제시한 것도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의 9월 발표가 단순한 사업 선정 발표를 넘어, 지난해 15% 관세 합의의 최종 이행 조건을 가르는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uni1219@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