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예보) 직원 A씨는 예보의 지방이전이 논의되기 시작한 이래로 자녀 출산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직장이 서울인 배우자와 함께 지방으로 내려갈 수 없고, 결국 혼자 타지에서 출산과 육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A씨는 “저출산 극복을 외치는 나라에서 지방 이전으로 아이 낳을 용기를 잃었다”며 “지방 이전 논의가 들려오면서 저희 부부의 미래 계획은 온통 엉켜버렸다”고 호소했다.
김영현 예보 노조위원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상우 금감원 노조위원장(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김세연기자)
김영현 예보 노조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융시장의 한가운데서 예보는 대한민국 금융안정의 심장 역할을 해 왔다”며 “2022년 이후 저희 회사(예보)가 금융회사 검사 조사, 유관기관 협업 보호, 상품 점검, 차등 보험료율 산정 등을 목적으로 실시한 국내 출장 건수는 2만5497건이다. 이 중 서울 출장 건수는 1만8053건으로 70.8%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홍콩, 유럽 연합 등 세계 어느 나라도 예보 기구를 금융시장의 중심에서 옮긴 사례는 없다”고 짚었다.
김상우 금감원 노조위원장도 “금감원의 역할은 단순히 금융 사고를 수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며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을 밀착해 감시해야 할 금감원의 입지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목표에만 매몰돼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충분히 살펴봐야 한다. 금융산업이 후퇴하고 금융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것이 불 보듯 뻔한 금감원의 지방 이전 논의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두 노조는 이어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예보·금감원을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 대상에서 제외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 △이전이 국가 경제에 미칠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 투명하게 공개할 것 △청년 직원 등 특정 세대에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 수립을 중단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회견문은 대통령실 경청통합수석실에 전달됐다.
앞서 금감원 구성원 1538명이 응답한 설문조사에서는 지방이전 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이 85.6%에 달했다. 특히 만 40세 미만 직원은 92.5%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으며 80.4%는 이직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98.8%는 금감원 본원의 서울 소재 유지가 적정하다고 했으며 지방에서 근무 중인 인원의 93.4%도 서울소재 유지가 적정하다고 봤다.
전문성을 지닌 직원 이탈 가능성은 더 컸다. 지방 이전 시 이직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고 답한 회계사 직원은 78.9%, 변호사 직원은 85.5%로 집계됐다.
예보와 금감원 외에도 지방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들의 노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지방이전 대상으로는 금융위·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성평등가족부 등 행정기관이 거론된다. 이들 행정기관 이전 논의에 맞춰 소속 공공기관 이전 문제도 함께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IBK기업은행·수출입은행 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공공기관이 아닌 농협·수협중앙회도 지방이전 후보로 계속해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농협중앙회는 이미 세 차례에 걸쳐 시위를 진행했고, 국책은행 노조도 지난 11일 공동 집회를 진행했다. 오는 25일에는 농협중앙회·서민금융진흥원·교직원공제회 노조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한국노총 금융노조는 다음 달 4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예보와 금감원 노조는 이날 타 금융 공공기관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날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 기관 노조는 “추가 연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면서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금융노조의 총파업 참여 여부에 대해서도 “연대 요청이 오면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