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가느니 떠난다”…예보·금감원, 지방이전 반대 한목소리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24일, 오후 03:49

[이데일리 김세연 기자] “손쉽게 지방으로 이전하라고 말하는 그 짧은 정책 한 마디는 직장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가족을 해체하거나, 수많은 맞벌이·여성 노동자들을 경력 단절의 위험으로 내몰며 결국 아이 낳기를 포기하게 합니다.”

예금보험공사(예보) 직원 A씨는 예보의 지방이전이 논의되기 시작한 이래로 자녀 출산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직장이 서울인 배우자와 함께 지방으로 내려갈 수 없고, 결국 혼자 타지에서 출산과 육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A씨는 “저출산 극복을 외치는 나라에서 지방 이전으로 아이 낳을 용기를 잃었다”며 “지방 이전 논의가 들려오면서 저희 부부의 미래 계획은 온통 엉켜버렸다”고 호소했다.

김영현 예보 노조위원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상우 금감원 노조위원장(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김세연기자)
김영현 예보 노조위원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상우 금감원 노조위원장(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김세연기자)
A씨처럼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반대하는 예보,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원(노조원)들은 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 이전 추진을 즉각 중단해달라고 촉구했다. 빠르면 오는 25일 국무회의에서 행정기관 지방이전 안건이 심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지방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 노조들은 공동행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영현 예보 노조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융시장의 한가운데서 예보는 대한민국 금융안정의 심장 역할을 해 왔다”며 “2022년 이후 저희 회사(예보)가 금융회사 검사 조사, 유관기관 협업 보호, 상품 점검, 차등 보험료율 산정 등을 목적으로 실시한 국내 출장 건수는 2만5497건이다. 이 중 서울 출장 건수는 1만8053건으로 70.8%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홍콩, 유럽 연합 등 세계 어느 나라도 예보 기구를 금융시장의 중심에서 옮긴 사례는 없다”고 짚었다.

김상우 금감원 노조위원장도 “금감원의 역할은 단순히 금융 사고를 수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며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을 밀착해 감시해야 할 금감원의 입지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목표에만 매몰돼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충분히 살펴봐야 한다. 금융산업이 후퇴하고 금융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것이 불 보듯 뻔한 금감원의 지방 이전 논의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두 노조는 이어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예보·금감원을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 대상에서 제외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 △이전이 국가 경제에 미칠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 투명하게 공개할 것 △청년 직원 등 특정 세대에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 수립을 중단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회견문은 대통령실 경청통합수석실에 전달됐다.

앞서 금감원 구성원 1538명이 응답한 설문조사에서는 지방이전 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이 85.6%에 달했다. 특히 만 40세 미만 직원은 92.5%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으며 80.4%는 이직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98.8%는 금감원 본원의 서울 소재 유지가 적정하다고 했으며 지방에서 근무 중인 인원의 93.4%도 서울소재 유지가 적정하다고 봤다.

전문성을 지닌 직원 이탈 가능성은 더 컸다. 지방 이전 시 이직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고 답한 회계사 직원은 78.9%, 변호사 직원은 85.5%로 집계됐다.

예보와 금감원 외에도 지방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들의 노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지방이전 대상으로는 금융위·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성평등가족부 등 행정기관이 거론된다. 이들 행정기관 이전 논의에 맞춰 소속 공공기관 이전 문제도 함께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IBK기업은행·수출입은행 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공공기관이 아닌 농협·수협중앙회도 지방이전 후보로 계속해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농협중앙회는 이미 세 차례에 걸쳐 시위를 진행했고, 국책은행 노조도 지난 11일 공동 집회를 진행했다. 오는 25일에는 농협중앙회·서민금융진흥원·교직원공제회 노조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한국노총 금융노조는 다음 달 4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예보와 금감원 노조는 이날 타 금융 공공기관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날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 기관 노조는 “추가 연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면서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금융노조의 총파업 참여 여부에 대해서도 “연대 요청이 오면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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