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 "팔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美 PE '좀비 자산' 급증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24일, 오후 06:28

[이데일리 마켓in 김연지 기자] '이상징후→좀비→헝그리 좀비'

미국 사모시장 내 장기간 회수하지 못한 포트폴리오 기업이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업계에서 자산의 상태를 단계별로 나눠 보기 시작했다. 높은 차입 부담과 실적 부진, 엑시트 지연이 겹치면서 원하는 가격에 매각하기도, 추가 자금을 투입하기도 어려워진 자산을 이른바 '좀비'로 분류하는 식이다.

특히 유동성이 풍부하던 시기 높은 밸류에이션에 기업을 사들인 PE들이 고금리와 기업가치 조정을 동시에 맞으면서 이러한 자산이 빠르게 쌓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를 통한 회수 통로까지 좁아지자 GP 주도형 세컨더리와 컨티뉴에이션 펀드가 새로운 출구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미국 PE 시장의 운용자산이 꾸준히 불어나는 가운데, 미투자자금(드라이파우더)보다 기존 포트폴리오의 순자산가치(NAV)가 더 빠르게 쌓이고 있다.(사진=피치북 보고서, 2025년 12월 31일 기준)
미국 PE 시장의 운용자산이 꾸준히 불어나는 가운데, 미투자자금(드라이파우더)보다 기존 포트폴리오의 순자산가치(NAV)가 더 빠르게 쌓이고 있다.(사진=피치북 보고서, 2025년 12월 31일 기준)




◇글로벌 PE, 5년 넘게 보유한 기업만 4568곳

24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미국 PE 운용사 포트폴리오에 있는 기업 1만3509곳 가운데 4568곳(33.8%)이 인수된 지 5년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536곳은 통상적인 회수 기간이 지나도록 엑시트가 이뤄지지 않았다. 장기 보유 자산이 쌓이면서 설정 7년이 넘은 바이아웃 펀드에 남아 있는 투자자산의 순자산가치(NAV)도 8600억달러(약 1188조원)를 웃돌았다. 미국 PE가 통상 기업을 인수한 뒤 3~5년 안팎에 매각이나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규모다.

단순히 보유기간만 길어진 것도 아니다. 지난 2021년 인수 기업까지 포함해 투자 후 5년 이상 지난 미국 PE 포트폴리오 기업은 6437곳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3332곳(약 52%)은 2021년 말 이후 추가 인수나 자본재조정(리캡), 리파이낸싱 등 별다른 거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치북은 이 같은 장기간의 거래 공백이 단순히 GP가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재무적 선택지가 줄어들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봤다.

이들 자산이 시장에 쌓인 배경에는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기에 이뤄진 공격적인 인수가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PE들은 지난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풍부한 유동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활용해 레버리지드 바이아웃(LBO) 전략을 펼쳤고, 인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높은 멀티플에 기업을 사들였다. 금리가 오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자 부담은 커졌지만 인수 당시 가격을 인정해줄 매수자는 줄어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헐값에 팔자니 수익률이 떨어지고, 계속 들고 있자니 펀드 만기와 LP의 회수 요구가 걸림돌이 됐다.

이 때문에 일부 포트폴리오 기업은 현금으로 이자를 내는 대신 원금에 이자를 더하는 PIK 방식을 활용해 당장의 현금 부담을 낮추고 있다. 여기에 재무약정이 느슨한 '코버넌트 라이트' 대출 비중까지 높아지면서 재무상태가 악화돼도 대주단이 조기에 개입할 여지가 줄었다. 당장 디폴트에 빠지지는 않지만 높은 레버리지와 부채 부담을 안은 채 엑시트가 계속 미뤄지는 '좀비 상태'가 장기화하기 쉬워진 셈이다.



◇막힌 M&A·IPO 대신 컨티뉴에이션펀드로

전통적인 회수 시장이 막히면서 세컨더리 시장은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특히 기존 펀드에 속한 포트폴리오사를 새로 만든 컨티뉴에이션 펀드로 넘기는 GP 주도형 세컨더리 거래가 대표적이다. 기존 LP에게는 현금 회수와 재투자 중 선택권을 주고, GP는 기업을 더 오래 보유할 수 있는 구조다. 글로벌 세컨더리 거래 규모가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된 것도 이런 수요와 맞물려 있다.

다만 컨티뉴에이션 펀드가 모든 장기 보유 자산의 해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게 피치북 분석이다. 세컨더리 투자자도 기업의 실적과 부채 수준을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GP가 기대하는 가치와 시장이 받아들이는 가격 사이의 간극이 크면 거래 자체가 어렵다. 매각이 미뤄질수록 LP 입장에서는 실제 회수되는 현금이 줄고, 장부에 잡힌 평가가치가 언제 현금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자본시장에서는 좀비 자산이 당장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PE 펀드는 폐쇄형 구조라 환매 압력이 크지 않아 부실 자산을 당장 처분하지 않고 버틸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산 매각과 손실 인식도 함께 늦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회수가 지연된 자산이 계속 쌓인 상황에서 신용 여건이나 기업 실적까지 악화하면 그동안 미뤄둔 손실이 한꺼번에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고서는 "PE가 장기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있는 자산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높은 레버리지와 실적 부진, 엑시트 지연이 동시에 나타나는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 PE 시장의 리스크는 당장의 부도보다 팔리지 않는 자산이 계속 쌓이고 있다는 데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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