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앞세운 韓과 달라"…자국 PEF 체급 키우기 나선 美·英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25일, 오전 06:43

[이데일리 마켓in 김연지 기자] 국내 인수합병(M&A) 시장 내 글로벌 사모펀드(PEF)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대형 글로벌 펀드를 앞세운 외국계 운용사들이 국내 핵심 매물을 잇달아 가져가는 가운데 토종 PEF는 펀드레이징과 규제 부담을 동시에 떠안으면서 체급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토종 PEF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사모시장 정책을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 나라는 외국 자본의 핵심기업 인수에는 별도의 심사 장치를 두면서도 연금 등 장기자금이 자국 사모시장으로 흘러들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외국 자본의 핵심기업 인수는 관리하되, 자국 사모시장이 글로벌 운용사에 밀리지 않도록 체급을 키우는 정책도 병행하는 셈이다.

대표적인 곳이 영국이다. 영국은 방위와 에너지, 인공지능(AI), 첨단소재 등 17개 민감 분야에서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 인수를 국가안보·투자법(NSI Act)에 따라 사전 심사한다. 심사 결과 국가안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거래에 조건을 붙이거나 인수 자체를 막을 수 있다.

영국은 이와 동시에 연금자금을 사모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영국 주요 퇴직연금 사업자 17곳은 지난해 맨션하우스 어코드(Mansion House Accord·영국 주요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연금자금의 사모시장 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자율 협약)를 맺고 2030년까지 DC형 퇴직연금 자산의 10%를 비상장주식과 인프라, 부동산 등 사모시장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최소 5%는 영국 내 사모시장에 투자한다는 목표다. 연금의 장기자금을 자국 사모시장으로 돌려 기업 성장과 투자 기반을 함께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운용업계의 규제 부담도 규모와 위험에 맞게 손질하고 있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달 대체투자펀드운용사(AIFM) 규제 개편안을 내놓고 운용사 규모와 위험 수준에 따라 규제를 달리 적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기로 했다. 일률적으로 같은 규제를 적용하기보다 규모와 위험에 맞춰 부담을 조정해 자산운용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미국도 비슷하다. 외국인의 미국 기업 투자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국가안보 측면에서 들여다본다. 외국인이 미국 기업의 지배권을 취득하는 거래를 폭넓게 심사하고, 핵심기술과 핵심 인프라, 민감 개인정보 관련 기업은 일부 비지배 투자까지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펀드를 통한 투자도 필요할 경우 외국인 LP 등 투자자 구성과 지배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국 사모시장으로 들어오는 장기자금에는 문을 넓히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해 8월 미국의 대표적인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인 401(k) 가입자의 대체투자 접근을 확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비상장주식과 사모대출 등 사모시장 자산을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에 보다 폭넓게 담을 수 있도록 해 장기자금의 유입 통로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한국 역시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의 해외 인수·합병을 심사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고, 일정 규모 이상의 M&A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도 적용된다. 다만 차이는 자국 사모시장을 키우는 정책의 무게중심에서 나타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국에서도 기관투자가의 PEF 출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영국은 DC형 퇴직연금의 사모시장 투자 비중과 자국 투자 목표를 별도로 제시하고, 미국도 401(k)의 대체투자 접근을 넓히는 등 장기자금의 유입 통로를 정책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홈플러스 사태 이후 내부통제와 보고 의무, 레버리지 등 PEF 규제 강화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모시장으로 장기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방점을 찍은 미국·영국과 규제 강화가 전면에 선 한국은 정책의 무게중심 자체가 다른 셈이다.

국내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미국과 영국은 외국 자본의 핵심기업 인수는 관리하면서도 자국 사모시장으로 장기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함께 만드는 것 같다"며 "국내에서도 규제 강화와 별개로 토종 GP가 자금을 모으고 글로벌 운용사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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