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자녀는 투자재인가 소비재인가? 거부감이 드는 질문이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보자. 소비재는 그 자체로 만족과 행복을 주는 재화다. 좋은 식사, 여행, 취미 활동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투자재는 현재 비용을 지출하지만 미래에 수익을 기대하는 재화다. 주식, 채권, 부동산이 대표적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자녀가 분명한 투자재의 성격을 가졌다. 자녀는 노동력이었고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경제적 안전망이었다. 자녀가 많을수록 농사의 생산성이 높아졌고, 노후에 부양받을 가능성도 커졌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Gary Becker)는 가족을 경제적 의사결정의 단위로 분석하면서 자녀 양육 역시 비용과 편익을 고려하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높은 출산율은 높은 노후부양 기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127:4-5)라는 성경 구절이 이를 말해준다. 자녀에 대한 투자에는 노동력, 부모 부양, 가문의 보호, 사회적 영향력 확대라는 수익이 있었다.
현대 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자녀 양육 비용은 급증했지만 자녀에 대한 경제적 수익은 감소했다. 교육비, 주거비, 사교육비를 감안하면 자녀는 오히려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에게 투자한 비용을 금전적으로 회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부모들은 성인 자녀를 바라볼 때 여전히 투자재의 사고가 작동하고 있다. 은퇴를 앞둔 부모들이 자녀에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지원한다. 결혼 자금, 주택 구입 자금, 창업 자금, 손주 양육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내가 이렇게 해주었으니 나중에 나를 돌봐주겠지'라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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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에는 수익이 있어야 하고, 계약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성인 자녀 지원은 수익도 불확실하고 계약도 없다. 부모는 투자라고 생각하지만 자녀는 증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A 씨는 은퇴 직전 아들에게 아파트 구입 자금 2억 원을 지원했다. 그는 노후에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아들은 직장 때문에 지방으로 이사했고 생활에 바빠 부모를 자주 찾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는 자산을 이전했지만 부모가 기대한 심리적 수익은 실현되지 않았다. A 씨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학은 자녀를 점차 소비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부모는 자녀를 통해 기쁨과 사랑, 보람, 가족 공동체의 만족을 얻는다. 즉 자녀 지원 자체에서 효용을 얻는다. 소비재로 보는 관점은 직접적인 효용 이외에 두 가지 부가적 편익이 따라온다.
첫째, 부모의 노후 재무 상태를 안정되게 만든다. 투자재는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에 지금 과하게 지원할 수 있다. 나중에 봉양이라는 투자 수익이 없으면 부모의 노후가 위태롭게 된다. 주변에 자녀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가 노후에 곤궁한 생활을 하는 부모를 볼 수 있다. 반면 소비재로 생각하면 과하게 지원하지 않는다. 부모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녀를 지원하게 되므로 자신의 노후 재무 상태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다.
둘째, 신뢰자본(trust capital)이 형성될 수 있다. 자녀는 부모에게 다시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없이 살아간다. 부모 역시 재무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돼 자녀로부터 독립해 주체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서로 주체적인 존재가 되면 신뢰가 쌓일 수 있다. 물론 소비재로 보는 관점은 신뢰자본이 쌓이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A 씨와 달리 B 씨는 딸의 결혼 자금으로 1억 원을 지원하면서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처음부터 증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지원 금액도 B 씨의 노후에 부담되지 않게 줄였다. 오히려 딸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자체에서 만족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더 건강하게 유지됐다.
자녀에게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려는 순간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거래가 된다. 오히려 자녀는 아무런 기대 없이 그 순간에서 만족을 느끼는 소비재로 생각하는 게 낫다. 소비재이지만 과하게 돈을 쓰면 안 되며, 자신의 노후를 먼저 준비하고 남는 여력 안에서 자녀를 도와야 한다. 제한적 소비재인 셈이다. 이를 통해 부모와 자녀 간에 신뢰자본이 쌓일 수 있다.
이 신뢰자본은 계약적 관계로 무언가를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보험의 역할을 해주고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높여 준다. 자녀는 투자재가 아니며 그렇다고 소비재에 그쳐서도 안 된다. 한 걸음 나아가서 부모와의 상호 관계에서 같이 쌓아가는 신뢰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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