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빈소 장례 유감, 우리가 무엇을 없애고 있는가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30일, 오후 02:33

조문객을 위한 접견 공간을 따로 차리지 않는 이른바 ‘무빈소 장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 논쟁은 시종 비용과 편의라는 저울 위에서만 오간다. 그 대가로 무엇을 내려놓게 되는지 묻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유족은 인생에서 가장 경황 없는 시간에 이 선택을 한다. 무엇을 지우는지 모르는 채 내리는 결정이라면, 그것은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정보 없는 선택이다. 그래서 먼저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는 ‘무빈소(無殯所) 장례’라는 말을 그 뜻을 알고 쓰고 있는가.

‘빈소 빈(殯)’은 죽은 이를 서둘러 떠나보내지 않고 아직 우리 곁에 머무는 손님처럼 모셔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빈소는 조문객이 찾아와 인사를 나누는 장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고인의 시신을 모시는 공간이자, 무엇보다 유족이 고인을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곁에 머무는 공간이다. 그 시간 동안 유족은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슬픔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고인과의 살아온 역사를 회고하며 찾아온 이들의 위로를 받는다. 빈소의 주인공은 고인과 유족이다. 조문객은 조연자들이며 조문객을 맞는 빈객실은 그 여러 기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이 말이 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회자되면서 정작 그 선택을 하게 될 이들이 실체를 달리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무빈소’를 절차와 비용을 덜어낸 간소한 장례쯤으로 받아들인다. 고인을 안치하고 입관과 발인 일정을 정하고 나면 유족은 마지막으로 고인과 함께하며 기억을 정리해야 할 시간과 공간을 뒤로 한 채 매정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를 잃은 그날 저녁, 상주는 빈 집에 홀로 앉아 다음 날 입관 시간을 기다린다. 고인과 수십 년을 함께한 벗은 부고를 듣고도 찾아갈 곳이 없다.

정작 시신을 수습하고 염습·입관하는 ‘빈’ 자체가 생략되는 것도 아니다. 현행 장사법상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사망 후 24시간 이내 화장이 불가해 안치실과 입관실 이용은 어느 경우에나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 방식은 빈(殯)을 없앤 장례가 아니라 ‘무조문 장례’ 혹은 ‘무빈객실 장례’라 부르는 편이 실체에 가깝다. 사소한 지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름이 틀리면 논의도 틀어진다. 용어의 혼란은 한가한 논쟁이 아니라, 유족이 가장 취약한 순간에 내리는 결정의 조건이다.

사라지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지난 6월 본 대학 생사문화산업연구소 정기세미나에서도 확인했듯, 전통 장례가 지녀온 사흘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상실의 충격을 흡수하는 심리적 완충 장치였다. 그 완충이 사라진 자리에는 장례가 끝난 뒤에도 정리되지 못한 기억들, 이른바 ‘미해결 애도’가 남는다. 애도는 치르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뤄질 뿐이다. 그리고 미뤄진 슬픔의 대가는 장례비보다 훨씬 늦게, 훨씬 비싸게 청구된다.

애도는 유족만의 권리도 아니다. 장례는 유족이 치르는 사적 행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 평생 맺어온 관계가 마지막으로 모이는 자리다. 유족에게 조문을 사양할 권리가 있듯, 고인과 관계를 맺어온 이들에게도 배웅할 권리가 있다. 이는 유족에게 접객의 수고를 다시 지우자는 말이 아니다. 접대 없이도 분향하고 인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리는 남겨두자는 말이다.

물론 무빈소 장례가 언급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비용 부담은 커졌고 가족의 규모는 작아졌으며, 상주를 세우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줄여야 할 것은 허례와 접객의 부담이지, 고인 곁에 머무는 시간과 마지막 인사가 아니다. 짧아진 시간 안에서도 애도의 밀도를 높이는 길은 있다. 유족이 참여하는 염습 입관 의례, 고인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같은 방편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형식은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유족이 고인을 직접 배웅하고 기억하는 의례의 본질까지 변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빈소 장례’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그 이름 아래에서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먼저 아는 일이다. 유족이 고인 곁에 머무는 시간, 슬픔을 드러내고 위로받으며 상실을 회복해 갈 시간, 고인과 평생을 함께한 이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넬 자리가 사라진다. 무엇을 내려놓는지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른 채 선택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장례는 고인을 위한 마지막 절차이기 이전에, 남은 사람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첫 절차다. 그 절차의 이름부터 바로 세우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동국대학교 생사문화산업연구소

소장 이범수 교수

[기고] 무빈소 장례 유감, 우리가 무엇을 없애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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