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머니무브’에도 예금금리 인상 주춤…돈 굴릴 곳 없는 은행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31일, 오후 04:31

[이데일리 김세연 기자] 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은행들도 예금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인상 속도는 예상보다 느리다. 가계대출 총량이 사실상 한계에 다다르면서 높은 금리를 줘가며 예금을 추가로 끌어모을 요인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ATM기기 앞.(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시중은행 ATM기기 앞.(사진=연합뉴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지난 27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0%로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아직까지 주요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를 추가로 올리지 않았다. 은행들은 시장금리 움직임과 수신 상황 등을 살펴보며 예금금리 조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통상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은행의 예·적금 금리도 뒤따라 오른다. 실제 5대 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금리는 이미 연 3%대 초중반까지 올라왔다. 구체적으로 농협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금리는 3.25%,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3.2%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2.75%로 인상한 이후 지난달 20~23일 사이 5대 은행 모두 금리를 0.3%포인트씩 올린 결과다.

이달에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예금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지는 않는 분위기다. 은행 입장에서 추가로 예금을 끌어올 유인이 크지 않아서다. 은행은 예금 등으로 확보한 자금을 대출 등에 운용해 수익을 낸다. 그러나 올해 가계대출 총량 여력이 거의 소진되면서 새로 확보한 자금을 가계대출로 굴릴 수 있는 공간이 좁아졌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 13일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완화하면서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는 기존 약 4조 3400억원에서 6조 9800억원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지난 27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이미 6조 6677억원 늘어난 상태다. 단순 계산하면 추가 대출 여력은 3100억원가량에 불과하다. 집단대출 등 총량 산정에서 제외되는 항목을 고려하면 실제 여력에는 차이가 있지만 일반 가계대출을 추가로 크게 늘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다.

정기예금 잔액이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은행권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도 예금금리 인상 유인을 낮추는 요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금리를 더 얹어주지 않아도 자금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조달비용을 높여가며 수신 경쟁에 나설 이유가 크지 않다. 지난 28일 기준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1003조 1747억원으로 지난달 말보다 약 18조원 늘어났다. 정기예금 잔액은 5월부터 증가세를 이어가다가 이번 달 사상 최초로 1000조원까지 돌파했다.

예금이 늘어난다고 해서 은행에 무조건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은행은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예금을 받아 이를 대출 등에 운용해 수익을 낸다. 예금금리를 높여 자금을 더 끌어왔는데 이를 대출 등 수익성이 있는 자산으로 운용하지 못하면 그만큼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가계대출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수신 규모를 확대하기보다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확보하면서 조달비용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분이 지난달처럼 곧바로 예금금리에 반영될지도 불투명하다. 기준금리는 예금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지만 은행들은 시장금리뿐 아니라 대출 수요와 예금 유출입, 자체적인 자금 조달 상황 등을 함께 고려해 수신금리를 결정한다. 현재처럼 예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대출 확대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려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금리 인상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통상 자금이 빠져나가면 수신을 확보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데 현재는 증시 부진 등으로 은행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어 금리를 올릴 유인이 크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대출 총량이 2배로 늘어나긴 했지만 이미 총량을 초과한 은행들도 있다”면서 “실질적으로 가계대출에 배분된 금액이 많지 않아 자금(정기예금) 확보 유인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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