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후이 토요타자동차(중국)투자유한공사 총경리가 지난해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5 상하이모터쇼’에서 신형 렉서스 ES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뒤로 중국 소비자 수요를 차량 개발에 적극 반영한다는 렉서스의 ‘IN CHINA FOR CHINA’ 전략을 소개하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렉서스 중국)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차량 개발과 생산지가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프리우스 하이브리드와 수소차 미라이 등 토요타의 전략 차종은 일본에서 먼저 개발·생산한 뒤 세계로 확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 결정은 이 공식을 뒤집은 것이다.
토요타의 선택은 중국을 단순히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은 이제 자동차를 가장 많이 파는 곳을 넘어 차세대 자동차를 가장 빠르게 개발하고 생산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31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글로벌 EV 아웃룩 2026’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전기차 생산의 70%, 배터리 셀 생산의 80% 이상을 각각 차지했다. 양극재 생산은 약 85%를, 음극재 생산은 90%를 각각 웃돈다. 핵심광물 정제부터 부품, 배터리, 완성차까지 전기차 공급망이 중국 안에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더 중요한 것은 ‘속도’다. 중국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크고 부품과 배터리 업체가 밀집해 있어 신기술을 개발하고 곧바로 차량에 적용한 뒤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최근 중국 전기차 신흥업체들이 차량 플랫폼을 생산에 투입하기까지 통상 21~28개월, 경우에 따라 그보다 짧은 기간이 걸린다고 분석했다. 전통 완성차 업체가 36~48개월 가량 걸리던 개발 주기를 중국 업체들이 빠른 의사결정과 공급망 협업으로 압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요타가 중국을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에서 차를 만들면 중국 시장에 접근하기 쉬워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지 배터리·부품업체와 협업하고, 중국 소비자의 요구를 빠르게 반영하며, 새로운 제조공정을 시험할 수 있다. 토요타의 차세대 렉서스 SUV에 적용되는 기가캐스팅 역시 부품 수와 조립 공정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중국은 이제 값싼 생산기지가 아니라 차세대 제조기술까지 시험하는 거대한 실험장이 된 셈이다. 완성차 업계 한 인사는 “세계 1위 토요타마저 중국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라고 했다.
토요타만의 움직임도 아니다. 로이터는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르노, 아우디 등 글로벌 업체들이 중국 내 연구개발 조직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GM의 중국 합작사가 개발한 뷰익 전기차는 중국에서 개발한 플랫폼과 900볼트 초급속 충전 기술 등을 활용했고, 르노와 아우디 역시 중국 연구개발(R&D) 조직을 활용한 차량을 글로벌 전략과 연결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연구센터(CAR)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부상을 ‘6S’로 분석했다. 산업정책과 공급망, 개발 속도, 생산능력, 정부 지원, 판매 확대가 서로 맞물려 경쟁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업체들의 강점은 단순한 원가 경쟁력에 머물지 않고 빠른 개발과 시장 출시 능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경쟁의 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을 역임한 이항구 박사는 “중국이 무서운 이유는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시장 안에 모여 있다는 데 있다. 거대한 소비자가 있고, 배터리와 핵심 부품 업체가 있고, 전기차를 빠르게 생산할 제조 기반을 갖췄다”면서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신기술을 개발해 실제 차량에 적용하고 시장에서 검증하기에 중국만큼 큰 테스트베드를 찾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 자동차 산업에도 적지 않은 경고음을 울린다.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만 경계해서는 상황을 제대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 큰 위협은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넘어 기술 개발 속도와 상품 기획력까지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에서 개발한 기술과 차량을 세계 시장에 내놓기 시작하면 경쟁의 출발점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배터리와 전력반도체, 차량용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전장부품 등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는 분야에서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적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박사는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전기차 공급망의 중심이어서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거나 신차 개발 등 협력 관계를 무조건 배제하기는 어렵다”며 “중요한 것은 중국 의존 여부 자체보다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미국, 중국, 유럽 등 완성차 시장별로 전략을 차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