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난 뒷북 처벌…그 사이 CXMT는 K칩 핵심기술 다 베꼈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2일, 오후 11:51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고문(서울대 교수),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2년 D램 점유율이 1%대에 불과했던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 창신메모리(CXMT)의 점유율은 올해 1분기 7.6%까지 뛰었다. 4년여 만에 글로벌 4위까지 올랐다. 어느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격하는 복병으로 급부상했다.

이번 CXMT 기술 유출 사건의 교훈은 명확하다.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은 한 기업의 영업비밀을 훔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산업이 막대한 비용과 시행착오를 거쳐 확보한 ‘미래의 시간’을 경쟁국에 넘기는 행위다. 정부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 효과마저 갉아먹는다.

◇“기술 훔쳐도 7년이면 끝?”…기술유출 기대이익부터 꺾어야

검찰 수사와 법정 증언에 따르면 CXMT는 설립 직후인 2016년 9월 삼성전자 핵심 연구원을 영입하면서 삼성의 18나노급 D램 PRP를 확보했다. PRP는 약 600단계의 D램 제조공정 순서와 장비, 조건 등을 담은 일종의 ‘반도체 제조 레시피’다. 해당 연구원은 이직 직전 핵심정보를 12장 분량의 노트에 손으로 옮겨 반출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직 삼성 임직원은 올해 4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CXMT (사진=AFP)
CXMT (사진=AFP)
CXMT의 인재·기술 확보는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독일 키몬다에서 유래한 D램 특허를 확보했다. 키몬다·인피니언, 대만 메모리업계와 미국 마이크론 출신 인력을 영입했다. 정상적인 인재 채용과 특허 취득은 구별해야 한다. 문제는 인력과 함께 전 직장의 영업비밀과 핵심 기술까지 이동하는 경우다. 첨단산업에서는 핵심 인력의 이동만으로도 개발기간이 크게 단축될 수 있다.

유사한 사건은 미국에서 있었다. 마이크론 대만법인 출신 인력이 대만 UMC로 이직하며 D램 관련 영업비밀을 유출한 사건이다. 한 직원은 퇴직 직전 마이크론의 기밀자료 900여 개를 내려받아 USB와 개인 클라우드에 저장했고, UMC는 이를 중국 국유기업 푸젠진화(JHICC)와 D램 기술 개발에 활용하려 했다. UMC는 영업비밀 절취 혐의를 인정하고 6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담했지만, 푸젠진화는 형사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았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도 같은 경험을 했다. 2012년 삼성과 LG가 개발하던 AMOLED 등 핵심기술이 검사장비 협력업체 직원들을 통해 중국 업체로 유출된 정황이 확인됐고, 최근에도 LG디스플레이 출신 직원들이 광저우 공장의 설계도면과 공정정보를 유출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기술 유출 막으려면 ‘사람·기술·시간’ 지켜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술 유출 대응 역시 사후 처벌 중심에서 벗어나 ‘예방’ 중심의 산업안보로 전환해야 한다. 핵심인재가 국내에서 연구를 이어갈 이유를 만들고, 불법 유출에는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하며, 유출된 기술은 경쟁사의 제품으로 구현되기 전에 멈춰 세워야 한다.

기술 유출의 경제적 계산부터 뒤집어야 한다. 이번 CXMT 사건에서 선고된 징역 7년이 피해 규모에 상응하는 충분한 억지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연구개발비뿐 아니라 △유출 기술의 경제적 가치 △경쟁기업이 절감한 개발 기간과 비용 △시장점유율 하락에 따른 손실 △범죄자가 취득한 이익 등을 양형과 경제적 제재에 반영하는 ‘피해 규모 연동형’ 처벌 체계가 필요하다. 기술을 빼돌려 얻을 기대이익보다 적발됐을 때 부담해야 할 기대손실이 훨씬 커야 한다.

사후 처벌을 강화해도 이미 넘어간 기술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피해 확산의 즉시 차단’이다. 기술이 해외 생산라인에 구현되고 나면 몇 년 뒤 중형을 선고하더라도 원상 회복은 어렵다. 산업기술보호법에 ‘기소 전 산업기술 사용금지·보전명령’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수사 과정에서 산업기술의 불법 취득이나 해외 유출 혐의가 소명되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우려되는 경우 검사가 법원에 보전명령을 청구하는 것이다. 법원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기술의 복제·이전·사용을 잠정적으로 금지하고, 해당 기술을 활용한 제품 생산까지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동시에 핵심 인재가 대한민국에 남아 연구할 이유도 만들어야 한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도 국가핵심기술 전문인력의 이직 관리와 비밀유지계약 등을 보호조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겸업 금지나 비밀유지 의무만으로 우수 인재를 잡아둘 수 없다.

기업은 핵심 연구자에 대한 장기성과급과 주식보상을 확대하고, 관리직으로 전환하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는 연구개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인재정책의 범위를 ‘양성’에서 ‘핵심인재 유지’까지 넓혀야 한다. 고경력 기술자가 해외 경쟁기업으로 떠나는 대신 국내 대학·연구소·소부장 기업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2의 경력’ 경로도 마련해야 한다. 보안의 출발점을 사람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로 바꿔야 한다.

핵심인재가 대한민국에서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불법 기술유출에는 그 이익을 훨씬 뛰어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기술과 사람, 산업의 시간을 지키는 것. 그것이 산업안보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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