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우아한 비례' 택했다…세계 초일류의 산파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3일, 오전 05:02

국내 주요 그룹들의 사옥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입지와 디자인 선택과 건설 과정, 그 안에서 일군 성과까지. 사옥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산업사의 굵직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이데일리는 주요 그룹들의 사옥 연재를 통해 다양한 재계 이야기를 전한다.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유행 타지 않고 오랫동안 좋은 건물로 남을 ‘우아한 비례’ 안(案)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

지난 2008년부터 ‘삼성의 심장’으로 역할하고 있는 삼성 서초사옥. 이 건물을 설계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전 세계 건축계는 건물 외관을 비틀거나 곡선으로 휘게 한 비정형 건축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었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독특한 건축물로 도시 이미지 자체를 바꾸려는 ‘빌바오 효과’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런데 삼성의 선택은 달랐다. 당시 설계에 참여한 황재식 전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장에 따르면 공동 설계를 맡은 미국 건축설계회사 콘 페더슨 폭스(KPF)는 서초사옥 디자인으로 우아한 비례 외에 ‘비틀린 커튼월’, ‘극적인 조각’을 최종안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황 소장은 2011년 당시 대한건축학회지에서 “설계진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디자인으로 기울었지만 삼성은 가장 절제된 디자인을 택했다”고 전했다. 화려한 곡선, 파격적인 조형물 대신 수직과 수평을 강조한 각진 타워는 그렇게 탄생했다. 삼성 최고위임원 출신 한 인사는 “글로벌 기업 본사로서 시간이 지나도 시대를 타지 않는 단단함을 구현하려 한 것 아니겠는가”라며 “강남이라는 도시 맥락 속에서 절제된 배경 역할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사진 (사진=이영훈 이데일리 기자)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사진 (사진=이영훈 이데일리 기자)
삼성 서초사옥은 글로벌 초일류의 산파였다. 삼성은 2008년 즈음부터 발발한 글로벌 D램 치킨게임의 전략을 서초사옥에서 짜며 1992년부터 세계 1위를 굳혔고, 이는 현재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초석이 됐다. 2010년 시장에 나온 갤럭시S는 스마트폰의 판도를 바꿨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점유율은 2010년 8%에서 2025년 19%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서초사옥 입주 첫 해인 2008년 삼성전자 매출은 121조300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305조4000억원을 올렸다.

그 중심에는 ‘총수의 결단’이 있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2011년 4월 C동 42층 집무실로 처음 출근했다. 선대회장의 출근 자체가 곧 메시지였다. 현재 C동에는 이재용 회장의 집무실이 있다. 이 회장이 주요 빅테크 수장들을 만나며 ‘포스트 반도체’를 그리는 곳이 서초사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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