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관계자가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 뉴스1 임지훈 인턴기자
미국·일본·유럽의 국채금리가 수년 만의 고점으로 동반 상승하면서 국내 시장금리도 기준금리와 별개로 추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해외 장기금리 상승은 국고채와 은행채·회사채 금리를 밀어 올리며 시차를 두고 신규·차환 대출금리에 반영돼 가계·기업은 물론 정부의 자금조달 비용까지 높인다.
국내에서도 기준금리가 연 3.00%까지 올라선 가운데, 대규모 확장재정에 따른 물가 압력과 여전한 국고채 발행 물량 부담이 겹치면서 시장금리가 쉽게 내려오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지 않아도 글로벌 금리 급등이 국내 금융여건을 한층 긴축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경우 빚을 내 집을 마련한 '영끌' 청년층과 취약차주, 반도체 초호황의 수혜에서 비켜난 내수 중소기업·자영업자 등에게 금리 상승 충격이 집중되면서 'K자형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채 매도 행렬에…10년물 美 4.8%·日 3%·韓 4.4% 나란히 껑충
국제금융시장에 따르면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 1일(현지시간) 장중 연 4.812%로 올라 2023년 11월 이후 약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10년물은 3.005%에 달해 1996년 이래 가장 높았으며 독일·프랑스도 각각 2011·2008년 이후 최고 수준에 달했다.
국채금리 급등에는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재발, 국제유가 상승, 주요국 재정건전성 악화, 국채 공급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최근 브렌트유는 배럴당 95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90달러를 넘겼다. 고유가가 물가 상승 우려를 되살린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의 추가 긴축 전망에도 힘이 실렸다. 미국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9월 정책금리 인상 확률은 1주일 전 39.6%에서 67%로 뛰었다.
통상 위험 회피 국면에서는 안전 자산인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지만, 이번에는 고유가에 따른 긴축 전망과 재정 불안 등 국채 수요를 위축시키는 악재가 부각되면서 주식과 함께 매도됐다.
파장은 국내로 번졌다. 2일 국고채 3년물은 전날보다 3.1bp(1bp=0.01%포인트) 오른 연 3.922%, 10년물은 3.4bp 오른 4.405%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3년물이 3.926%, 10년물이 4.426%, 30년물이 4.686%까지 치솟았다.
국고채 금리 상승은 은행채·회사채 금리를 끌어올려 가계·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인다. 미래 현금흐름에 적용되는 할인율도 높여 주식 등 자산가치 역시 떨어뜨린다. 지난 2일 코스피가 3% 넘게 급락한 것도 국내외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 확대와 위험 회피 심리가 영향을 미친 결과로 분석됐다.
기준금리 3%·확장재정·국고채 223조…금리 하락 막는 '삼중벽'
경제정책 조합 또한 국내 시장금리 하락을 막아설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은은 7~8월 기준금리를 연속 인상해 현재 연 3%로 운용 중이다. 이는 중립금리 추정 범위 상단에 걸치거나 소폭 웃도는 수준으로, 통화정책이 완화·중립에서 약한 긴축 영역에 진입한 상태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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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재정정책은 확장 기조를 강화했다. 정부는 1일 발표한 2027년 예산안에서 총지출을 올해 본예산 대비 93조 원(12.8%) 늘린 820조 9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내년 국고채 발행은 222조 8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2조 9000억 원 줄어들지만, 여전히 220조 원대를 유지할 예정이며 순증 발행은 96조 3000억 원으로 13조 1000억 원 감소한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내년 국세수입이 올해보다 40% 이상 폭증할 전망임에도 국채 발행을 대폭 줄이지 않은 것은 늘어난 세수를 재정지출 확대와 미래대응기금 적립에 우선 활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10년 내국세 추세를 웃도는 세수 162조 3000억 원을 기금에 편입해 약 45조 원을 지출하고, 약 104조 원은 여유자금으로 적립하기로 했다. 국고채 신규 발행을 줄이는 데는 12조 5000억 원을 쓴다.
국고채 발행 축소는 보통 금리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채권시장은 13% 가까이 급증한 총지출이 물가와 금리에 미칠 영향에 더 주목했다. 정부지출 확대가 소비·고용과 서비스 가격을 자극한다면 한은이 물가 안정에 확신을 얻기까지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확장재정은 성장 동력 확충과 취약계층을 지원해 통화 긴축에 따른 경기 충격을 완화한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자칫 경제 전체의 수요와 유동성을 높이는 경우 통화 긴축 효과를 약화하고 높은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도록 해 정책 조합의 본래 목표를 상실할 수도 있다.
최근 유동성 지표는 증가세를 이어갔다. 한은에 따르면 광의통화(M2)는 6월 한 달 새 0.7%, 1년 전보다 6.0% 증가했다.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도 2019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 원을 넘어섰으며, 한 분기 만에 25조 9000억 원 불어났다. 정부의 재정확장에 경고음이 나온 배경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고채 순증 발행이 감소하는 점은 금리 상단을 제약하는 요인이지만, 총지출 증가율 12.8%의 확장재정은 금리를 높이는 요인"이라며 "정부 예산안은 금리를 낮추는 재료라기보다 정책금리 경로를 높게 유지하는 재료에 가깝다"고 밝혔다.
안 연구원은 한은이 내년 기준금리를 3.50%로 올린 뒤 상당 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봤다. 이 경우 정책금리 기대를 가장 잘 반영하는 국고채 3~5년물 금리도 하락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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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 금리 오르고 자영업 연체율 12.6%…약한 고리 충격 우려
한편 정책금리 경로와는 별개로 긴축적인 금융 환경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미국 시장금리가 최근 큰 오름세를 보였음에도 여전히 추가 상승 요인이 우세하다고 밝혔다. 근거로는 인공지능(AI) 투자 대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탄탄한 경제 성장세, 물가 둔화 정체, 재정적자 등을 제시했다.
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융 환경 긴축 리스크가 견조한 주가와 경제 성장을 유의미하게 흔들기 전까지 금리 상승 압력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뚜렷한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해외 국채 금리가 부담을 주고 있어 국고채 금리 하락 여지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외 시장금리 상승은 이미 대출금리에 짧은 시차로 반영되고 있다. 지난달 예금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연 4.64%로 석 달 연속 올랐다. 주택담보대출은 4.48%로 2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았고, 일반 신용대출 금리는 평균 6%에 육박했다.
상호금융사 외벽에 주택담보대출 현수막이 걸린 모습. © 뉴스1 박정호 기자
긴축적인 금융 환경의 부작용은 소득·신용도 낮은 취약차주에게 먼저 나타날 공산이 크다. 한은에 따르면 전체 차주 중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인 취약차주 비중은 작년 3분기 말 6.4%에서 올해 1분기 말 6.7%로 커졌다.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은 12.6%로 10분기 연속 두 자릿수를 이어갔다.
글로벌 금리 급등과 국내 정책 조합이 'K자형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 상승은 자산이 많은 가계에는 이자소득을 불려주지만, 대출이 많은 가계에는 소비를 줄이게 하는 이자 청구서로 돌아온다. 아울러 반도체 초호황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누리는 대기업과 달리, 내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낙수 효과가 도달하기 전까지 대출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신현송 한은 총재가 지난달 기준금리 연속 인상과 함께 성장률 전망을 대폭 상향 조정하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내비친 이유다. 당시 신 총재는 "금융안정 문제가 실물경제로 번지는 경우 취약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며 "10월 기준금리 결정에서는 성장세와 소득 개선이 가계나 취약층까지 파급되는 진행 정도도 주의 깊게 보겠다"고 말했다.
icef08@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