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보다 노동절약 기술로 인구 절벽 넘어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3일, 오후 07:27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대응하려면 고령층을 더 오래 일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만큼 적은 인력으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고령자가 생산성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사람이 부족한 업종보다 청년층이 많이 일하는 직종을 먼저 대체할 경우 오히려 노동시장의 인력 수급 불균형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공동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은 '고령화와 기술 진보'를 주제로 패널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공동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은 '고령화와 기술 진보'를 주제로 패널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3일 한국은행이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개최한 공동 콘퍼런스에서 고령화가 국가 경제의 성장을 제약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지속적인 경로로 ‘총요소생산성(TFP) 둔화’를 꼽았다. 이어 고령층의 노동 참여가 늘어나는 일명 ‘실버 배당’이 노동력 절대량 감소를 일부 보완할 수 있지만, 생산성 하락 자체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정년 연장이나 노동참가 확대 정책은 필요하지만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면서 “기술 개발의 방향을 청년 일자리를 단순히 대체하는 형태가 아닌, 고령 근로자가 현장에서 더욱 쉽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고령층 보완적(age-complementary) 기술’로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앤드루 스콧 런던비즈니스스쿨(LBS) 교수는 지난 70년간의 글로벌 실적 데이터를 분석해 저출산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분석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 각국의 자료를 추적·분석한 결과, 출산율 하락이 오히려 생산연령인구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임금 상승률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기업과 시장이 자체적으로 노동력을 덜 써도 되는 노동 절약적 기술을 개발하고 첨단 특허 출원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다. 젊은 인구의 희소성이 기술 혁신의 강한 유인책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다만 스콧 교수는 “향후 예상되는 인구 감소 속도는 과거의 경험을 한참 벗어나 있으며 시기별로 기술과 투자 반응도 다를 수 있다”며 “과거의 낙관적 경험을 미래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술 혁신의 핵심으로 부상한 AI가 인구 절벽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AI 노출도가 청년층 비중이 크고 교육·임금 수준이 높은 직종에 집중돼 있는 반면, 향후 인력 부족이 극심해질 돌봄·사회복지·음식점·건설업 등 저임금·저숙련 부문은 AI 대체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 구조대로 AI가 도입될 경우 청년층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한편, 사람이 필요한 인프라 현장은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구직-구인 미스매치’가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더해 마티아스 시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이코노미스트는 고령사회일수록 AI 기술의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짚었다. 고령 근로자일수록 AI 도입에 수반돼야 할 근로자의 재배치, 이직, 훈련 참여율 등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시프 이코노미스트는 “AI의 생산성 제고 편익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활발한 노동 재배치와 기업의 혁신 활력이 필수적이지만, 고령사회에서는 이 모든 요소가 구조적으로 취약해지기 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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