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사진=AFP)
러트닉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7월 마이크론의 뉴욕주 메모리 공장 착공 행사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거론하며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압박했다. 미국 정부도 지난 1월 일부 첨단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교역국과의 협상이 끝난 뒤 적용 범위를 넓히겠다고 예고했다. 다만 러트닉 장관은 이번에도 구체적인 관세율과 대상 품목 및 시행 시점을 밝히지 않았다.
현재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14~65나노미터(㎚) 로직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근 테일러에는 첨단 파운드리·연구개발(R&D) 시설을 조성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약 40억달러를 들여 HBM 패키징·테스트 및 R&D 시설을 짓고 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미국에 D램·낸드 전공정 생산시설은 없다.
관건은 미국 정부가 파운드리와 후공정 투자까지 한국산 메모리의 관세 감면 실적으로 인정하느냐다. 기업 단위로 투자 실적을 인정하면 양사도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품목별 생산시설이나 현지 생산량을 기준으로 삼으면 한국산 D램과 낸드는 감면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에서 D램과 낸드를 직접 생산하는 마이크론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웨이퍼에서 D램 등을 생산하는 전공정 팹을 미국에 추가로 건설하라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정부도 세부 기준을 주시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의 반도체 관세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 기업에 불리한 영향이 없도록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2000억달러의 전략투자와 1500억달러의 조선 협력자금 등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이 투자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이미 결정한 현지 투자를 관세 감면 실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관건이다. 미국이 이를 별개로 취급하면 기업들이 추가 투자 부담까지 떠안을 수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방문한 SK하이닉스 인디애나 팹 공사 현장에 대형 크레인과 중장비, 건설 자재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진=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구체적인 관세 방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232조 관세가 당장 임박했다고 판단할 만한 새로운 내용은 없다”며 “미국 정부가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면서 기업에 대한 투자 압박을 높이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AI와 반도체를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패권을 좌우할 전략자산으로 보고 있다”며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 투자를 피하기보다 어디에 어떤 시설을 지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