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까지 간 한국산 경유…수출 늘리고 싶어도 발 묶인 정유업계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4일, 오후 04:16

[이데일리 이수빈 기자] 유럽 시장까지 이례적으로 한국산 경유를 찾는 등 수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정유사 입장에서는 아시아보다 가격이 높은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정부의 수출 물량 관리로 추가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속내가 복잡하다.

4일 외신 등에 따르면 유조선 프리아모스호는 조만간 한국산 경유 약 9만t(톤)을 싣고 유럽으로 향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출발한 프리아모스호는 수에즈 운하를 거쳐 1만 9000㎞ 이상 항해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한국산 석유제품의 주요 수출처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거래다. 유럽 내 최종 목적지는 영국, 네덜란드 등이 거론된다.

유럽이 이처럼 먼 거리의 한국에서까지 경유를 수입하는 이유는 현지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 때문이다. 유럽은 자체 정제능력이 제한돼 경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 여건이 악화되며 수입 물량 확보가 어려워졌다. 이런 가운데 유럽의 경유 가격이 아시아보다 높은 수준으로 형성돼 아시아산 경유를 유럽으로 보내는 경제성도 커졌다.

국내 정유업계로선 기회가 될 수 있다. 지정학적 위험이 집중된 주요 산유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갖춘 만큼 글로벌 공급 차질이 커질수록 한국 정유사의 공급 경쟁력이 부각될 수 있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하루 원유 정제능력은 총 330만 배럴에 달한다.

하반기에는 계절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경유의 정제마진도 상승하게 된다. 통상 9~10월에는 글로벌 정유사들의 정기보수가 집중돼 석유제품 공급이 줄어드는 반면 수확철 농업·물류용 경유 수요와 겨울철 난방유 재고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늘어난다.

올해는 유럽의 낮은 경유 재고에 러시아의 수출 제한과 글로벌 정유시설 가동 차질까지 겹치면서 경유 시장의 공급 압박이 예년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정유업계가 마냥 호재를 기대하긴 어렵다. 정부가 국내 석유제품 수급 안정을 위해 수출 물량을 지난해 수출 물량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어 글로벌 가격 상승을 계기로 수출을 대폭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유업계에서는 국내 공급에 차질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수출 물량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의 경유 소비량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수출하지 못하는 물량은 재고로 비축하는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 석유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는 만큼 국내 소비 물량을 제외한 잉여 물량에 대해서는 수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경유 수급이 타이트한 상황에 수출을 늘릴 기회가 될 수 있는데 정부의 수출 제한이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홍해 통과한 한국 유조선.(사진=연합뉴스)
홍해 통과한 한국 유조선.(사진=연합뉴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