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 팹 가동하려 사람 옮기면 교섭?…반도체업계 ‘근무지 변경’ 촉각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4일, 오후 07:29

[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신규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기존 사업장의 숙련인력을 옮기는 경우에도 노조와 교섭해야 할까. 정부가 공장 신설에 따른 배치전환과 근무지 변경 등이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놓으면서 반도체 업계가 구체적인 적용 기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장 신설과 투자 결정 자체는 교섭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인력 배치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포토] 광화문네거리 총파업 결의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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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전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이 향후 신규 팹 가동과 인력운영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날 노동부는 이른바 ‘N% 성과급 요구’는 의무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다만 정부는 공장 신설·이전과 투자,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도입 자체는 경영상의 판단이라면서도, 이와 관련해서 인력배치·근무형태·근무조건 등이 바뀌는 경우에는 의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신설 공장 배치전환과 근무형태 변경, 근무지 이전에 따른 지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부담은 덜어낸 반면, 경영 판단에 대한 노조 개입 역시 명문화된 셈이다.

문제는 신규 팹을 가동하기 위한 통상적인 인력 배치와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을 실제 현장에서 어디까지 구분할 수 있느냐다. 공장을 새로 가동하려면 설비 설치와 시운전, 공정 안정화 경험을 갖춘 기존 사업장의 엔지니어를 먼저 투입해야 한다. 이후 신규 인력에게 장비 운용 방식과 공정 노하우를 전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팹의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후속 배치도 불가피하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청주 M15X 건설과 가동을 준비하면서 경기 이천캠퍼스에서 근무하던 일부 D램 인력을 청주로 배치했다. M15X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집중 생산하기 위해 건설한 신규 팹이다. 이천에서 이동한 인력들은 인프라 구축과 장비 세팅 등 기반 작업을 맡았다. 신규 팹 가동 과정에서 기존 사업장의 인력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실제 사례다. 삼성전자 역시 과거 화성 사업장 근무자들을 평택 사업장으로 배치시킨 바 있다.

다만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배치전환이 모두 교섭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부 지침도 공장 신설과 이전으로 인한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을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례로 제시했다.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사업 확대를 위한 인력 이동이 어느 단계부터 구조조정성 배치전환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인력운영 계획이 최종 확정되기 전이라도 계획이 ‘수립 중’이라는 사실이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되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도체 투자는 경쟁사의 움직임과 고객 수요를 고려해 극도의 보안 아래 추진된다. 어느 단계부터 근무지 변경과 배치전환 계획을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릴 가능성이 있다.

직원들의 근무지 선호도도 변수다. 수도권이나 기존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인력을 다른 지역의 신규 팹으로 옮길 경우 거주지와 출퇴근 시간, 자녀 교육 등 생활 전반이 달라진다. 회사가 인력 배치를 결정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이동을 기피하면 지원 범위와 배치 방식 등을 둘러싼 교섭이 장기화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 계획도 향후 적용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는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을 2027년 단체교섭 의제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장 건설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기존 사업장에서 호남 지역으로 인력을 옮기는 계획이 구체화되면 근무지 변경과 지원 방안 등이 교섭 의제로 떠오를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호남반도체는 아직 방향성 정도만 나온 것이라 이사회 결의 등 아직 단계별로 거쳐야 할 내용이 많아서 당장에 이런 지침이 어떻게 적용될 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근무지 이전 및 인력 재배치 문제는 개인마다 선호도가 다르고, 그런 경우에 미리 소통을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불거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업부서 전체를 옮기는 경우에는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일부 근무지 변경이나 근무 조건 변경 시 타당한 근거가 있다면 문제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업계는 신규 투자에 따른 통상적인 인력 배치까지 노사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다 구체적인 적용 기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성과급과 같은 핵심 쟁점에는 정부가 선을 그었지만 인력 배치 등은 개별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며 “지침이 공표된 만큼 이제부터는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해석·적용되는지가 중요해졌다. 당분간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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