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토큰증권 정책, 문은 열고 통로는 막았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5일, 오후 03:01

[김태림 엑시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 지난 4일 금융위원회가 ‘토큰증권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토큰증권이란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 곧 여러 기관이 하나의 장부를 함께 기록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발행되는 증권을 말한다.

이번 발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확장이다. 부동산과 음원 조각투자에 머물러 있던 논의가 주식·채권·펀드로 넓어졌고, 토큰증권을 위한 별도의 인가체계를 만들지 않기로 하면서 기존 금융투자업 인가만으로 취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분산원장 그 자체에 법적 장부의 효력을 인정하는 방식도 그대로 유지됐다.

미국이 상장주식을 예탁기관에 맡겨두고 그 위에 토큰을 발행하는 파일럿을 진행 중인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분산원장이 곧 법이 인정하는 증권 장부가 된다. 당국은 홍콩의 국채 토큰화를 두고 분산원장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방식이라며 한국 전자증권법 체계와 같은 계열로 분류했다. 글로벌 시장의 본류가 국채와 머니마켓펀드(MMF)의 토큰화로 옮겨갔다는 사실은 지난 연재에서 확인한 대로다. 그 흐름에 비추어 보면 이번 발표의 방향은 옳다.

그런데 보도자료에는 없는 내용이 하나 있다. 정책방향과 함께 공개된 예탁결제원의 분산원장 표준요건 가이드라인에 담긴 규칙이다. 하나의 증권은 하나의 분산원장에서만 발행되고 유통돼야 하며, 일단 발행된 뒤에는 다른 분산원장으로 일부든 전부든 옮길 수 없다. 가이드라인은 이를 상호운용 금지라고 부르고, 이 규칙을 전자증권법 시행령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챗GPT)
(그래픽=챗GPT)
같은 날 발표된 로드맵과 나란히 놓고 보면 문제가 드러난다. 로드맵의 마지막 3단계는 스테이블코인 등을 결제수단으로 삼는 온체인 결제, 곧 증권과 대금이 장부 위에서 동시에 오가는 결제 인프라의 구축이다. 증권이 기록된 원장과 결제수단이 기록된 원장이 서로 연결돼야 비로소 성립하는 구상이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은 증권이 자기 원장을 떠나는 것을 금지했고, 나아가 증권 원장 안에서 수수료 등 대가를 목적으로 가상자산을 만들거나 거래하는 것까지 일체 금지했다. 증권은 나갈 수 없고, 결제수단은 들어올 수 없다. 그렇다면 증권과 대금을 동시에 주고받는 결제는 어디에서 이뤄지는가. 이 물음에 문건이 내놓은 답은 ‘상호운용 기술을 검토해 나가겠다’는 한 줄이 전부다.

이렇게 설계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통로를 ‘브릿지’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 브릿지에서 대형 해킹이 거듭됐다. 로닌에서 약 6억달러가, 웜홀에서 약 3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증권 인프라에 이런 구조를 들이겠다는 감독당국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폐쇄형으로 출발하는 선택 자체는 합리적이다.

문제는 출발점이 그대로 종착점이 돼버리는 경우다. 증권사들은 지금 저마다 다른 분산원장 기술을 저울질하고 있다. 원장이 갈리는데 종목의 이전이 막히면, 같은 종류의 자산이 원장마다 나뉜 채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된다. 발행 시점의 기술 선택은 만기까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되고, 남는 출구는 토큰증권을 기존 전자증권으로 되돌리는 길 하나뿐이다.

(자료=금융위원회, 그래픽=챗GPT)
(자료=금융위원회, 그래픽=챗GPT)
1단계의 상품 구성까지 겹쳐 보면 문제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내년 2월에 허용되는 것은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MMF와 사모사채, 신탁방식의 비상장주식, 그리고 공모 조각투자다. 앞의 둘은 일반투자자와 무관하고, 공모 조각투자는 샌드박스에서 이미 해오던 일이다. 제도가 열려도 시장이 조용하다면, 2단계로 나아갈 동력부터 흔들린다.

이달 말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의 하위법규 개정안이 입법예고된다. 원장 간 이전을 금지하는 규칙은 아직 시행령에 반영될 예정일 뿐 확정된 것이 아니다. 의견을 낼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세 가지를 적어두고 싶다. 첫째, 원장 간 종목 이전을 2단계에서 허용하기 위한 조건을 시행령에 미리 명시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열자는 주장이 아니다. 무엇이 충족되면 열리는지를 적어두자는 것이다. 그 조건이 없으면 사업자는 인프라 투자를 회수할 계획조차 세울 수 없다.

둘째, 가상자산 금지의 범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금지가 증권의 발행과 유통 업무에 한정되는지, 기록의 조회나 증명을 위해 퍼블릭 체인을 활용하는 것까지 막는지에 따라 국내 토큰증권이 글로벌 시장과 접속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

셋째, 하나의 장외거래소가 서로 다른 원장의 종목을 함께 거래지원할 수 있는지를 확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야 원장의 분산이 유동성의 분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 정부의 문건은 이 물음을 다루지 않았다.

토큰증권의 의미는 기록을 디지털로 바꾸는 데 있지 않다. 그 일은 전자증권이 이미 하고 있다. 자산과 대금이 같은 인프라 위에서 동시에 움직일 때, 토큰증권은 비로소 기존 제도와 다른 무엇이 된다. 그 연결을 언제, 어떤 조건 아래 허용할 것인지가 이번 입법예고의 실질적인 쟁점이다.

오는 28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세미나 ‘토큰증권(STO) 이후, 실물자산 토큰화(RWA) 입법과제 모색’에서도 이 문제를 짚는다.

김태림 엑시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동국대 법무대학원 디지털자산법무전공 대우교수·한양대 경영대학원 AML전공 겸임교수. (사진=김태림 변호사 제공)
김태림 엑시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동국대 법무대학원 디지털자산법무전공 대우교수·한양대 경영대학원 AML전공 겸임교수. (사진=김태림 변호사 제공)
<토큰증권 이후, 실물자산 토큰화의 과제> 기고 연재

8월30일 <[기고]강남 수백억 빌딩 토큰화 불허? 韓 기막힌 현실>

: ①윤현근 INSIGHT3 Inc. 대표이사

9월5일 <금융위 토큰증권 정책, 문은 열고 통로는 막았다>

: ②김태림 엑시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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