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만 뜨겁고 가계는 냉랭…“과도한 금리인상 땐 K자 양극화 고착”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6일, 오전 11:01

[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 경제의 확장세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출 호조의 온기는 여전히 가계와 내수로 충분히 번지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물가에 대응해 금리를 과도하게 올릴 경우 가계의 이자 부담과 소비 위축을 키워 수출과 내수 간 ‘K자형 양극화’를 고착시키고, 경기 회복마저 조기에 꺾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AI생성
사진=AI생성
◇반도체 수출 비중 48% 육박…가계 ‘낙수효과’는 아직

6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최근 경제 동향과 경기 판단(2026년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6% 성장했다. 민간소비의 성장 기여도는 0.2%포인트에 그친 반면 수출은 0.7%포인트를 기록하며 성장을 이끌었다.

수출 호조는 반도체에 집중됐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월 25.9%에서 올해 8월 약 47.5%로 1년 새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8월 전체 수출도 전년 동월보다 68.7% 증가하며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갔다.

반면 수출 호황의 과실이 가계로 흘러가는 ‘낙수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전체 가계 실질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1분기 0.4%에서 2분기 1.5%로 증가 폭이 확대됐지만, 여기에는 공적·기초연금과 각종 사회수혜금 등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지급하는 공적이전소득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

이를 제외하면 가계 소득 사정은 오히려 나빠졌다.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1분기 -0.3%에서 2분기 -1.3%로 감소 폭이 커졌다. 같은 기간 실질 공적이전소득 증가율은 5.6%에서 24.0%로 급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작년 하반기 이후 이어진 반도체 수출 경기 호조에 따른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이 확실하게 내수와 가계로 파급된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며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이 없었다면 사상 최대의 수출 경기 호조가 전혀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기 양극화가 심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도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7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2.4%, 전년 동월 대비 0.8% 각각 감소했다. 특히 자동차·가전·가구·통신기기처럼 한 번 구입하면 오래 사용하는 내구재 판매는 전년 동월보다 4.1% 줄었다. 내구재 소비가 향후 소비 흐름을 가늠하는 선행지표라는 점에서 내수 회복세가 아직 강하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진=현대경제연구원
사진=현대경제연구원
◇가계빚 2000조 넘었는데 금리까지…“과잉대응 경계”

문제는 가계의 소득과 소비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 부담까지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2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 8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가계대출은 1891조 3000억원에 달했다. 가계신용에서 주택 관련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59.0%로, 2021년 2분기 52.6%를 저점으로 중장기적인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대외금리 상승과 한은의 7·8월 연속 기준금리 인상이 맞물리면서 대출금리에 영향을 주는 시장금리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고정형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지난 1월 말 3.715%에서 8월 말 4.382%로 올랐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주요 기준인 코픽스(COFIX)는 1월 2.77%에서 7월 3.18%로 상승했다.

주 본부장은 “금리 상승 속도가 과도하게 빠를 경우 민간 주체가 자산·부채 조정을 통해 가계 건전성을 확보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게 된다”며 “주식 등 자산시장까지 약세로 돌아설 경우 가계 소비가 위축되면서 내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이은 금리 인상의 충격은 시차를 두고 누적될 수 있다. 금리 부담이 가계와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경우 소비 위축을 넘어 동시다발적인 신용 경색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가계의 소득과 소비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지나친 긴축이 오히려 내수 회복을 늦추고 현재의 경기 확장세를 단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 본부장은 “과도한 금리 인상과 같은 정책적 실수가 내수 회복을 지연시켜 경기 확장 국면이 조기에 종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더라도 통화정책이 ‘과잉대응(Policy Overkill)’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속도와 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금리 인상 역시 신용 경색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세심하게 추진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취약한 내수의 활력을 높이는 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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