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4000개 AI가 본다" MD부터 물류까지…유통 AI 이젠 '실전'으로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6일, 오후 02:05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유통업계의 인공지능(AI) 활용이 고객 상담이나 광고 문구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상품기획(MD)과 검색, 물류 등 핵심 업무로 파고들고 있다. 수천개 브랜드를 분석해 MD의 의사결정을 돕고, 고객의 구매 의도를 읽어 상품을 골라주는가 하면 화물과 차량을 자동으로 연결한다.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실제 구매를 끌어내는 ‘실무 도구’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롯데백화점 '브랜드AI'를 사용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임직원들의 모습 (AI 이미지) (사진=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 '브랜드AI'를 사용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임직원들의 모습 (AI 이미지) (사진=롯데백화점)
6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11번가, CJ대한통운(000120) 등 주요 유통·물류업체들이 AI 적용 범위를 현업 곳곳으로 넓히고 있다. 기업이 축적한 매출·고객·운송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결정을 돕거나 검색·배차 등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단계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AI 도입 자체에 의미를 두던 실험적 단계를 넘어 생산성과 매출 등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고도화 중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사람의 판단 영역까지 AI가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롯데백화점은 4000여개 입점 브랜드를 분석하는 사내 시스템 ‘브랜드 AI’를 지난달 말 구축해 현업에 도입했다. 흩어져 있던 매출과 고객 데이터를 연결해 브랜드별 성과 추이와 구매 연관성 등을 분석하고, 이를 브랜드 입·퇴점 등 MD 전략 수립에 활용한다. 도입 후 한 달간 재접속률은 70%를 기록했고, 사용자 조사에서는 기존 유사 업무보다 생산성이 2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AI 역할은 내부 업무를 넘어 구매를 끌어내는 단계로도 확장되고 있다. 11번가는 지난 7월 고객의 구매 의도를 분석해 상품을 추천하는 ‘AI 검색’을 선보였다. 노트북을 검색하면 ‘휴대하기 쉬운’, ‘게임에 최적화된’ 등 용도별 키워드를 제시하고, 조건을 고르면 가격과 배송, 리뷰를 따져 상품을 추려준다. 7월 한 달간 AI 검색의 구매전환율(ICVR)은 기존 통합검색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검색 단계에서 구매 조건을 구체화한 것이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비율을 높인 셈이다.

상품이 오가는 물류 영역에서도 AI가 업무 방식을 바꾸고 있다. CJ대한통운의 미들마일(기업 간 화물운송) 플랫폼 ‘더 운반’은 계약 운임과 운행 이력, 노선별 수요, 화물 특성, 지역별 차주 수급 등을 AI로 분석해 운송 방안을 제안하고 차량 매칭 정확도를 높였다. 서비스 초기 50% 미만이던 자동배차 성공률은 최근 80% 이상으로 높아졌다. 여기에 화주가 엑셀 파일을 올리거나 AI와 대화하듯 정보를 입력하면 운송 주문이 자동 등록되는 기능도 시범 운영 중이다.

유통업에서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하는 배경에는 방대한 데이터가 있다. 고객과 상품, 재고·배송까지 쌓인 데이터를 AI와 연결하면서 업무 효율을 높일 여지가 커졌다. 글로벌 산업 전반에서도 AI는 실험에서 운영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지난해 8~9월 24개국 6개 산업 기업 임원 3235명을 조사한 결과, 실험 중인 AI 가운데 40% 이상을 운영 단계로 옮긴 기업은 25%였다. 54%는 3~6개월 안에 이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AI 활용이 곧바로 매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AI로 효율성과 생산성이 개선됐다는 기업은 66%였지만 매출 증가 효과를 거뒀다는 기업은 20%에 그쳤다. 향후 AI로 매출을 늘릴 것으로 기대한 기업은 74%였다. 앞으로는 AI 도입 자체보다 이를 기존 사업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접목해 성과를 만들어내느냐가 유통업체 간 격차를 가를 전망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AI를 도입했다는 것만으로 앞서간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각사가 쌓아둔 데이터를 실제 업무에 얼마나 잘 맞춰 쓰느냐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기술을 쓰더라도 적용하는 업무와 현장의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며 “실제 성과가 확인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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