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패션업계 다음 승부처…이젠 '○○ 경쟁'

경제

이데일리,

2026년 9월 07일, 오전 11:28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패션업계의 경쟁 무대가 옷장에서 일상으로 넓어지고 있다. 수트를 입고 위스키를 즐기는 법을 알려주는가 하면 러닝화를 신고 실제 도심을 달려볼 기회를 제공하고, 산을 오르는 캠페인을 연다. 옷 한 벌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취향과 문화를 직접 경험하게 해 소비자를 ‘팬’으로 묶어두려는 전략이다. 제품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워지면서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를 얼마나 깊게 만드느냐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성수동 ‘무신사 런 서울숲’에서 고객이 트라이얼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러닝화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무신사)
서울 성수동 ‘무신사 런 서울숲’에서 고객이 트라이얼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러닝화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무신사)


◇위스키·러닝·하이킹까지…옷 밖으로 나온 패션


7일 업계에 따르면 LF(093050)·무신사·K2 등 주요 패션업체들이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브랜드 경험을 잇달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유명 모델과 광고로 이미지를 전달했다면 이제는 소비자를 브랜드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한 번의 행사로 끝내지 않고 프로그램을 지속 운영하거나 연례 캠페인으로 이어가며 소비자와 관계를 쌓는 사례도 늘고 있다.

K2, 시그니처 하이킹 캠페인 ‘2026 어썸하이킹’ 성료. (사진제공=K2)
K2, 시그니처 하이킹 캠페인 ‘2026 어썸하이킹’ 성료. (사진제공=K2)
대표적인 변화는 패션과 다른 취향의 결합이다. LF(093050)의 영국 클래식 브랜드 닥스는 지난 달 2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조승연 작가 등을 초청해 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과 ‘브리티시 수트 라이프스타일’ 클래스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영국 수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위스키를 시음했다. 닥스는 오는 11월에도 VIP 고객 대상 미술·문화 강연과 스타일링 클래스를 연다. 이젠 수트 판매에서 나아가 그에 어울리는 취향을 제안하고, 고객이 함께하는 경험까지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브랜드 경험은 소비자가 직접 몸을 움직이는 참여형으로도 진화 중이다. 무신사는 지난 4월 서울 성수동에 러닝 전문 편집숍 ‘무신사 런 서울숲’을 열고 러닝화 ‘트라이얼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매장에서 러닝화를 신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을 빌려 서울숲 야외 코스를 직접 달린 뒤 착화감과 성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푸마·살로몬·브룩스·아디다스 등의 러닝화를 이용해 볼 수 있다. 단순 쇼핑을 넘어 제품을 고르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러닝 경험으로 바꾼 셈이다.

아웃도어 업계에선 캠페인을 해마다 이어가며 팬층을 쌓는 브랜드도 있다. 대표적으로 K2가 2018년 시작한 참여형 하이킹 캠페인 ‘어썸하이킹’은 올해 7회째를 맞았다. 올해 처음 래플 방식으로 참가자를 모집한 결과 1000명 모집에 1만 3426명이 몰렸다. 지원자의 91.8%가 20~40대였고 여성 비중도 54.9%였다. 참가자들은 전국 11개 산에서 각자 산행한 뒤 사진과 후기를 남겼다. 등산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매개로 소비자를 브랜드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더 디스틸러스 라이브러리'에서 열린 닥스 남성 브리티시 수트 라이프스타일 클래스에서 참석자들이 배대원 글렌피딕 앰버서더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LF)
지난 2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더 디스틸러스 라이브러리'에서 열린 닥스 남성 브리티시 수트 라이프스타일 클래스에서 참석자들이 배대원 글렌피딕 앰버서더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LF)


◇로고보다 취향·서사…브랜드 경쟁도 ‘팬덤’으로


패션업계가 이처럼 경험과 커뮤니티에 공을 들이는 것은 소비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어서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 패션시장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경험 사치(Lavish on Experience)’를 꼽았다. 소비자의 지출 우선순위가 패션에서 취미·여가·여행 등 경험 영역으로 분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소가 인용한 NH농협은행 집계에서도 20~30대는 백화점 쇼핑 등의 소비는 줄인 반면 스포츠 경기와 공연, 수영장·스키장 등 경험에는 지출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브랜드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연구소는 과거 소비자가 브랜드 로고로 자신을 표현했다면 최근에는 취향과 가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서사가 있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이름이 알려진 브랜드를 넘어 ‘나와 맞는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의미다. 업계가 이제 상품을 넘어 경험과 서사까지 함께 파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브랜드의 경쟁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본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광고는 끝나면 잊히지만 함께 달리거나 산에 오른 기억은 브랜드를 다시 찾는 이유로 남는다”며 “옷을 팔기 전에 관계를 먼저 만드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런 프로그램은 단기간 매출로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고 꾸준히 이어가야 팬층으로 연결되는 만큼 이를 얼마나 오래 끌고 갈 수 있느냐에서 브랜드 간 차이가 벌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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