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상업용 부동산의 새로운 리스크[0과1로 보는 부동산세상]

재테크

이데일리,

2025년 4월 26일, 오전 08:01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도시가 보내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2025년 4월, 부산 사상구 도시철도 공사현장에서 지름 5m, 깊이 5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광명시 양지사거리 부근 신안산선 복선전철 제5-2공구 지하터널 공사 현장과 상부 도로가 함께 붕괴하는 사고가 났다. (사진=연합뉴스)
불과 1년 내 같은 노선에서만 10차례 이상 땅꺼짐이 반복됐다. 서울 마포구·강동구·광명시는 물론 일산 마두동까지 이어지는 싱크홀 소식은 ‘예외적 사고’가 아닌 도시 인프라의 구조적 문제로 읽힌다.

서울 강동구에서는 싱크홀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고, 고양시 마두동에서는 지하 3층 기둥 파손으로 상가 78개가 한 달 넘게 영업을 멈췄다. 싱크홀은 물리적 붕괴를 넘어, 상업용 부동산 자산가치와 시장 신뢰도에 직결된 ESG 리스크로 재정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지하 인프라의 불안한 현주소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1,400여건에 달한다. 이 중 54.7%가 상·하수도관의 노후화 또는 손상으로 인한 사고였다. 특히 서울 하수관로의 30%는 설치된 지 50년 이상 경과한 초고령 설비이며, 전국 45,627km에 달하는 상·하수도관 중 상당수가 위험 수위이다.

정부는 지하안전관리법을 통해 통합지도 사업에 647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도시 과밀화와 지하 개발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상업지구와 오피스 밀집 지역일수록 지하 인프라의 스트레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가치에 직격탄을 날리는 지반 붕괴

싱크홀의 위험성은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 리스크’로 직결된다. 오피스 테넌트는 ‘불안한 위치’에 입주를 꺼리고, 보험사는 위험 지역에 대한 가산 보험료를 요구한다. 또 리테일 상권은 유동인구 감소로 직격탄을 맞는다.

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싱크홀 발생 지역 내 부동산은 임대료 하락과 계약 해지율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싱크홀이 발생한 건물과 인근 부동산은 자산가치 평가에서 상당한 디스카운트가 적용되는 사례들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는 ‘일시적 사고’가 아닌, 상업용 부동산의 장기적 가치와 수익성에 직결되는 문제다. 지하 리스크가 수익률 리스크로 전이되는 명백한 사례인 것이다.

현재 부동산 ESG는 ‘에너지 효율’, ‘탄소 절감’, ‘지속가능한 운영’에 집중되어 있다. 알스퀘어 RA에 따르면 G-SEED 인증 건물은 2020년 4,290건에서 2024년 6,923건으로 60% 이상 증가했고, LEED 인증도 237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하 안전’은 이러한 인증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2024년 기준, 연면적 3만㎡ 이상 대형 건물 중 약 64%가 LEED Gold 또는 G-SEED 최우수 등급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 건물들이 지반 침하 위험지역에 위치한다면 인증 가치는 무의미해진다.

싱크홀은 ‘자연재해’가 아닌, 노후 인프라와 공사 부실, 과밀 개발이 만들어낸 인위적 리스크다. 따라서 ESG의 ‘S(Social)’ 항목에서 ‘지하 안전’은 반드시 평가돼야 할 핵심 지표다.

◇자산 가치 평가의 새로운 패러다임

상업용 부동산 투자자와 개발사는 이제 ‘지하 리스크’를 자산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는 이미 지질 특성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지역별 부동산 투자 리스크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리나라도 ESG 지표에 ‘지하 리스크 계량화’라는 새로운 층위를 더해야 할 시점이다. 구체적으로는 △ESG 인증에 지하안전 진단 및 누수 감지 체계 포함 의무화 △외부 독립기관을 통한 시공사 감리 강화 △지하 통합지도에 기반한 자산가치 평가 도구 개발 △지반 위험 정보의 투명한 공개 법제화가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크게 흔들린다. 싱크홀은 공사 사고가 아닌, 자산가치 하락의 전조이며 ESG 리스크의 실질적 지표다.

ESG가 일회성 인증이 아닌, 실질적 자산가치와 생존성의 잣대가 되기 위해서는 ‘지하를 보는 ESG’로 확장돼야 한다. 기후위기가 ‘하늘에서 내리는 재난’이라면, 싱크홀은 ‘땅 밑에서 시작하는 재난’이다.

발 디딘 땅이 무너지면 아무리 화려한 건물도 의미가 없다. 우리 시선을 발밑으로 돌려야 할 때다.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사진=알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