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피킹의 시대: 상업부동산 시장의 이분법[0과 1로 보는 부동산세상]

재테크

이데일리,

2025년 8월 09일, 오전 08:01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상반기 상업부동산 시장은 디지털 코드처럼 명확한 이분법을 보여준다. 선택받는 자산은 ‘1’이 되어 날개를 달고, 그렇지 못한 것은 ‘0’이 되어 시장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물류센터 시장의 ‘Code Red’와 오피스 시장의 ‘선별적 회복’이라는 두 키워드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상업부동산 전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의 단면이다. ‘부동산은 부동산’이라는 뭉뚱그린 접근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 물류센터: ‘Code Red’가 던진 경고의 메시지

알스퀘어 2025년 상반기 물류센터 마켓리포트 타이틀이 ‘Code Red’인 이유는 명확하다. 신규 공급량은 전기 대비 74% 급감해 약 16만 평 규모에 그쳤다. 2023년 상반기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시장 침체가 아닌 구조적 전환기의 신호탄이다.

권역별 데이터는 뚜렷하다. 서북권은 전기 대비 90% 이상 공급량이 줄었고, 중앙권은 3개 반기 연속 공급이 전무하다. 이는 수도권 외곽 지역조차 공급 타이밍을 조절하거나 개발을 유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조달의 어려움, 공사비 상승, 수요 불확실성 증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진짜 주목할 점은 임대시장의 양극화다. 상온 물류센터의 평균 공실률은 15%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자산별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무신사와 크린랩, CJ대한통운, 한익스프레스 등 준공 전 선임차 계약을 체결한 자산들은 입주와 동시에 전면 임대가 완료되며 시장 우량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여주 등 일부 지역의 대형 자산은 준공과 동시에 전면 공실 상태로 시장에 등장했다.

저온 물류센터 시장은 더욱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전체 평균 공실률은 22% 중반대로 전기 대비 2.3%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이 개선을 견인한 것은 CJ대한통운, OB맥주, 한익스프레스 등 선임차 사례들이다. 실사용 기반 선임차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투자시장 역시 선별적 거래가 두드러졌다. 청라, 시화, 인천, 이천 등지에서 거래된 자산의 공통점은 기존 앵커 임차인을 보유하거나 냉장 설비를 갖춘 검증된 자산이라는 점이다. 더 이상 면적이나 입지만으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 오피스: 수치로 입증된 ‘선별적 회복’

서울 오피스 시장의 2025년 2분기 데이터는 물류센터와 비슷한 듯, 다른 양상이다. 주목할 수치는 2025년 상반기 누적 거래액이 작년 연간 수준의 70%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회복세를 넘어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 회복과 투자 의지의 부활을 의미한다.

하지만 회복의 수혜는 모든 자산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 여의도 권역이 서울 내 가장 낮은 공실률과 가장 높은 임대료 상승률을 동시에 기록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업 중심의 안정적 수요와 프라임 오피스로의 이동이 가속화된 결과다.

강남권역 또한 IT·테크·게임 업종의 대형 오피스 수요가 견고했다. 빅테크와 외국계 IT 기업, 고성장 중견기업들의 이전과 확장이 이어지며 초대형급 오피스의 공실이 빠르게 해소됐다. 일부 거래에서는 권역 내 역대 최고 평당가를 경신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중소형 자산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임대료 하락과 공실 누적이 동시에 나타났다. 같은 권역, 때로는 같은 블록 안에서도 자산의 크기와 스펙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거래의 특징도 명확하다. 거래는 프라임급 대형 자산에 집중되고 있으며, 거래 주체도 기관투자자와 실사용 기업이 다수다. 매입 목적 역시 수익형 투자를 넘어 사옥 확보, 전략적 자산 운용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사진=알스퀘어)
◇ 두 시장이 보여주는 공통 패턴: 체리피킹의 구조화

물류센터의 74% 공급 급감과 오피스의 공급 중단, 물류센터의 15%대 상온 공실률과 22% 중반대 저온 공실률, 오피스의 상반기 거래액 70% 달성. 이런 수치들은 표면적으로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바로 ‘체리피킹(Cherry Picking)’의 구조화다.

첫째, 공급 측면에서 두 시장 모두 극도로 신중한 접근을 보인다. 물류센터의 74% 급감, 서북권의 90% 이상 감소, 중앙권의 3개 반기 연속 공급 전무라는 수치는 개발업계가 더 이상 ‘묻지마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확실한 수요가 보장되지 않으면 착공하지 않는 신중한 접근이 일반화됐다.

둘째, 수요 측면에서는 선별적 집중이 심화했다. 물류센터에서 선임차 확보 자산과 일반 자산 간의 극명한 차이, 오피스에서 여의도·강남 프라임 자산과 중소형 자산 간의 격차가 이를 보여준다. 과거처럼 ‘일단 싸면’ 고려하던 시대는 끝났다.

셋째, 투자 시장에서는 기관투자자와 실사용 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다변화가 나타났다. 오피스 시장의 상반기 70% 거래액 달성은 단순한 수익형 투자를 넘어 전략적 자산 확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생존을 위한 새로운 룰: 데이터가 말하는 성공 조건

이런 변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물류센터의 2023년 상반기 대비 10분의 1 수준 공급량, 중앙권의 3개 반기 연속 공급 전무, 오피스의 상반기 70% 거래액 달성이라는 수치들은 메가트렌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자산 소유자들에게는 새로운 벤치마크가 필요하다. 물류센터에서 상온 15%대, 저온 22% 중반대라는 평균 공실률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시장 기대 수준을 보여준다. 이 수준을 유지하거나 개선하려면 단순한 ‘부동산 지주’에서 ‘공간 서비스 제공자’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

개발업체들은 공급량 74% 급감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사전 임차 확보, 운영사 파트너십 등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성공 확률을 높여야 한다.

투자자에게는 오피스 시장의 상반기 70% 거래액 달성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이 회복되고 있지만, 그 혜택은 선별적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전통적 지표뿐만 아니라 ESG, 디지털 인프라, 운영 효율성 등 새로운 가치 척도를 이해해야 한다.

체리피킹의 시대, 상업부동산 시장의 이분법은 가속화될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자는 ‘1’이 되어 승리하고, 과거에 안주하는 자는 ‘0’이 되어 시장에서 퇴출당할 것이다.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 앞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