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안정 vs 재산권 보장…'전세 9년 보장제' 쟁점은[똑똑한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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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5년 10월 18일, 오전 11:00

[법무법인 심목 김예림 대표변호사] 최근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되는 ‘임대차 9년 보장제’는 단순히 계약 기간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계약갱신청구권은 1회 갱신이 가능해 최대 4년까지 임대차 기간이 보장된다. 그런데 개정안은 이를 3년 단위로 2회 갱신해 최대 9년 거주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강화하려는 취지지만, 임대인의 재산권 제한과 시장 왜곡이라는 법적·경제적 쟁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서울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사 앞에 전월세 시세표가 붙어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우선 임대차 9년제는 임차인에게 주거 안정성을 높여주는 제도다. 빈번한 이사로 인한 생활 불편, 자녀 교육의 연속성 문제, 이사비와 중개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특히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로 불안감이 커진 시점에서 장기 거주권 보장은 사회적 불안을 완화할 수 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주거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지역 공동체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임대인의 입장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9년 동안 실거주나 매각 등으로 계약을 종료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으며,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질 경우 위장 전입이나 분쟁이 늘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갱신청구권을 확대하면 법원이 계약 거절 사유를 판단하는 소송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부작용이 존재한다. 임대인은 장기 계약에 따른 물가 상승, 세금 인상, 금리 변동 등 장기 리스크를 고려해 초기 보증금이나 월세를 높게 책정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전세보다 월세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전세 매물이 줄면 서민 주거 안정성은 오히려 약화될 우려가 있다.

또 하나의 핵심 문제는 ‘이중 가격 구조’다. 현재도 신규 계약은 시장가격을 반영하지만 갱신 계약은 인상률이 5%로 제한되어 있어 동일 단지 내에서도 임대료 격차가 크다. 9년 보장제가 도입되면 이런 괴리는 더 확대될 수 있다. 일부 임대인은 장기 거주자보다 신규 세입자를 선호하거나, 편법적으로 임대료를 높이려는 유인이 생긴다.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임대료 인상률 상한뿐 아니라, 시장 임대료와의 괴리를 조정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제도 도입 시 일률적 강제보다는 선택제나 단계적 도입이 현실적이다. 장기 임대계약을 체결한 임대인에게는 세제 혜택이나 금융 지원을 제공하고, 임차인에게는 보증금 반환보증을 강화하는 식의 유인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임대료 조정 기준은 지역별 임대료 지수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법률적으로는 계약 해지와 갱신 거절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장기계약 중 임차인이 중도 퇴거할 경우 위약금, 보증금 반환 시점, 대체 임차인 모집 의무 등 구체적인 절차를 명시하지 않으면 분쟁이 급증할 수 있다. 계약 해지와 관련된 민법, 임대차보호법, 판례 간 정합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다.

김예림 변호사.


결국 임대차 9년제의 본질은 기간의 연장이 아니라 관계의 안정에 있다. 임차인의 거주권 보호와 임대인의 재산권 보장을 조화시키는 정교한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제도의 취지가 살아난다. 제도 도입은 불가피한 변화일 수 있으나, 그 속도와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실험적 도입과 데이터 기반 평가를 거쳐 보완하는 절차적 접근이 필요하다.

임대차 9년은 한 세입자의 권리 문제가 아니라, 한국 주거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시도다. 안정과 효율,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맞춰야 이 제도가 단순한 임대차 보호를 넘어, 지속 가능한 부동산 시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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