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 면접제’ 고액 보증금 시대 끝낼 수 있다[손바닥부동산]

재테크

이데일리,

2025년 11월 29일, 오전 08:00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한국 임대차 시장에서 보증금 수억 원은 너무나 흔하다.

(사진=구글제미니)
전세든 반전세든, 심지어 월세 계약조차 수천만 원의 보증금이 기본처럼 붙는다. 임차인은 계약 한 번으로 자신의 자산 상당 부분을 묶어두고, 임대인은 언제든 그 거액을 반환할 책임을 진다. 이런 고액 보증금 구조는 오랜 시간 굳어진 관례 때문이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누적된 신뢰 부재가 빚어낸 결과다. 임대인은 임차인의 지불 능력·소득 안정성·생활 태도를 정확히 파악할 방법이 없고, 임차인은 임대인의 재무 상태·보증금 반환 가능성·주택에 숨어 있는 위험까지 온전히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증금은 위험을 돈으로 해결하는 장치가 되어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가 공개한 연도별 분쟁조정 접수 현황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임차인 측 분쟁 접수 건수는 매년 1,200~2,000건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보증금 반환, 계약 해석, 갱신 문제, 임대료 조정 등 임차인 입장에서 억울하거나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임대인의 분쟁 접수도 매년 300~400건대에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임대차 분쟁을 임차인의 문제로만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임대인 역시 임차인의 월세 체납, 계약 미이행, 갈등 증가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국 임대차 시장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가 불안을 떠안는 구조이며, 어느 한쪽만 피해자가 아니다. 신뢰가 제대로 제도화되지 않은 시장에서는 누구도 안정적일 수 없다.

연도별 주택임대차분쟁조정 접수 현황(그래픽=도시와경제)
이제 한국은 이 불안정한 구조를 바꿀 제도적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 중심에 임차인 면접제 도입이 있어야 한다. 이는 임차인을 심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임차인의 지불 능력과 신뢰성을 계약 전에 객관적으로 확인해 보증금 부담을 줄이고 분쟁을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다. 임대인은 불확실성을 줄이고, 임차인은 주관적 판단이 아닌 공정한 기준으로 평가받으며 계약 조건에서 실질적인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이미 해외 선진국들은 이런 구조를 정착시켰다. 미국은 계약 전에 임대인이 임차인의 신용 점수, 재직·소득 정보, 급여 명세서, 은행 잔고, 이전 집주인의 추천서를 확인한다. 필요 시 면접을 통해 월세 납부 능력과 규칙 준수 의지까지 파악한다. 즉, 임대인은 임차인을 감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으로 위험을 평가한다.

일본은 임차인 심사가 계약의 필수 절차다. 보증 회사가 개입해 신용도와 직장 정보를 정밀하게 확인하고, 고위험 임차인은 연대 보증인까지 요구된다. 이는 임대인의 위험 부담을 제도적으로 줄이는 장치다.

독일은 세입자 보호가 매우 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을 선정할 때는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SCHUFA 신용정보, 통장 내역, 재직증명 등을 포함한 Self-Disclosure 제출이 필수이며, 서류 합격자만 면접을 본다. 면접 경쟁이 수십 대 1인 경우도 잦다.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지키면서도 임대인은 임차인을 합리적으로 평가한다.

영국은 비자·여권 등 ‘Right to Rent’ 확인과, 자금 출처 및 금융 정보를 검증해 합법적 거주와 지불 능력을 미리 확정한다. 계약 이후에는 임차인의 ‘조용하고 안정적인 거주권(Quiet Enjoyment)’이 법적으로 보장된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임차인의 신용·재정·신뢰성을 계약 전에 검증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며, 그 덕분에 보증금이 낮고 분쟁이 적다. 신뢰가 제도적으로 확보되니, 보증금을 높일 이유가 없다.

반면 한국은 계약 절차가 거꾸로 되어 있다. 집을 보고 마음에 들면 계약금부터 보내고, 중요한 정보는 계약 이후에 확인한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특약이 과도하게 늘어나며, 임대인과 임차인의 지위는 시장 상황에 따라 갑과 을을 수시로 오간다. 전세 비중이 줄고 월세가 빠르게 증가하는 현실은 위험 구조를 더 민감하게 만든다. 월세는 매달 현금이 들어오는 구조이기에 임차인의 소득 안정성·직업 지속성·지불 성실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체계적으로 확인할 장치가 없는 것이 문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임차인 면접제는 검토 수준을 넘어 정책적 전환의 필수 단계다.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평가를 도입해야 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모두 예측 가능한 계약 환경 속에서 위험을 줄여야 한다. 임차인의 신뢰성이 확보되면 보증금은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특약 과잉도 줄어들며, 분쟁은 획기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한국 임대차 시장이 성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의 고액 보증금이 아니라 신뢰의 제도화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사진=도시와경제)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