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지난 9월 1일 온스당 40달러를 돌파한 뒤 불과 약 4개월 만에 가격이 2배 이상 치솟은 것이다. 달러화 약세와 지정학적 긴장 고조가 귀금속 선호 심리를 키우면서, 금과 플래티넘(백금) 역시 최근 사상 최고가를 새로 쓰는 등 동반 강세장을 연출하고 있다.
이번 은 랠리가 촉발한 데에는 지난 주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의 은 수출 규제와 관련해 “좋지 않다. 은은 많은 산업 공정에 필요하다”고 발언한 영향이 컸다.
중국의 규제 조치는 실질적으로는 기존 정책을 연장한 것에 불과하며, 중국 상무부가 이미 지난 10월 30일 발표한 내용이다. 특별한 변화도 없고 이미 알려진 재료지만 머스크 CEO의 발언으로 투기 수요가 달라붙었다는 진단이다.
중국은 세계 3대 은 생산국에 속하지만, 동시에 세계 최대 소비국이기도 하다. 은을 주로 산업용 금속 생산 부산물로 채굴하며 순수출국은 아니다.
차이나퓨처스의 왕옌칭 애널리스트는 “현재 투기적 분위기가 매우 강하다. 중국 당국은 수출을 더 조일 것이라는 소문은 근거가 없다”며 “현물 공급이 빠듯하다는 얘기에 과도한 기대가 덧씌워진 상태다.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은 가격은 이달에만 40% 이상 상승했다. 연간 기준으론 182% 이상 뛰었으며, 1951년 이후 최고 성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은의 가파른 상승세는 각국 중앙은행의 대규모 금 매입에 따른 귀금속 가격 동반 상승, 상장지수펀드(ETF)로의 자금 유입,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세 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원자재 특성상 차입 비용이 낮아질수록 투자 매력이 커지며, 시장에선 내년 추가 금리인하 기대까지 반영되고 있다.
또한 지난주 미국이 베네수엘라 유조선을 봉쇄하고, 나이지리아 내 이슬람국가(IS)를 공습하는 등 지정학적 마찰도 귀금속의 ‘안전자산’으로서의 매력을 키웠다. 블룸버그 달러 스폿 지수는 지난주 0.8% 하락해 6월 이후 최대 주간 낙폭을 기록했는데, 달러화 약세는 일반적으로 귀금속 가격에 우호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은 가격 상승세는 금을 능가했는데, 시장 규모가 작아 유동성이 빠르게 말라붙기 쉽다는 점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런던 금 시장에는 약 7000억달러 규모의 금이 비축돼 있어 수급이 빡빡할 경우 대여를 통한 완충이 가능하다. 반면 은 ‘비상 저장고’가 없다. 지난 10월 공급 부족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에야 런던 금고로 상당한 물량이 유입됐다.
하지만 이는 다른 지역에서 물량 부족을 야기했다. 중국 상하이선물거래소에 연결된 창고 내 은 재고는 지난달 기준 2015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미국 상무부가 주요 광물 수입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결과에 따라 관세 부과 가능성이 제기돼 ‘쉽게 동원이 가능한’ 은 재고 상당량이 뉴욕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IG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켓 애널리스트 토니 시카모어는 “투자자들이 실물 은 확보에 몰리며 당장 인도받기 위해 1년 뒤 인도 가격보다 무려 7%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 용도가 많다는 점도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은은 태양광 패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각종 전자제품 등 다양한 제품의 핵심 소재로 쓰이며, 그 수요가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은 시장은 올해까지 5년 연속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
기술적 지표는 은 랠리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전개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14일 상대강도지수(RSI)는 80을 넘겨, 일반적으로 과열 구간으로 여겨지는 70을 크게 상회했다.
시카모어 애널리스트는 “착각해선 안 된다. 지금 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세대급 버블’”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새 광산 개발엔 최대 10년이 걸리는 데다, 자본은 불나방처럼 귀금속 버블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 거품이 언제 꺼질지 가늠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금 현물 가격은 0.4% 하락한 온스당 4515.20달러로 지난 26일 기록한 사상 최고가(4549.92달러)를 밑돌았다. 플래티넘과 팔라듐도 전거래일 사상 최고가를 찍은 뒤 이날은 동반 하락했다. 특히 팔라듐은 6% 넘게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