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에 설치된 업비트 광고. 2025.12.8 © 뉴스1 김도우 기자
국내 전통 금융권과 가상자산(디지털자산) 업계 간 '합종연횡'이 본격화되고 있다. 증권업계의 상징과도 같은 미래에셋그룹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인수에 나선 데 이어 4대 금융지주에 속하는 하나은행이 독보적 1위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핵심 주주로 올라서며 은행·증권업계가 가상자산 시장과의 접점을 빠르게 넓히는 모습이다.
특히 과거 금융권이 ‘실명계좌 제휴’ 수준에서 가상자산 업계와 거리를 유지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직접 인수에 이어 전략적 지분 투자까지 이어지며 '금가분리(금융·가상자산 분리)' 규제 빗장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은행은 두나무 주식 228만4000주(지분율 6.55%)를 약 1조 32억 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하고 있던 두나무 지분 일부를 인수하는 구조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이번 지분투자는 가상자산 기반 금융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며 "두나무와 함께 한국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과 가상자산 산업이 전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그룹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양사는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 과정에서 발행·유통·결제 등 관련 인프라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하나금융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두나무의 블록체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가상자산 시장 내 신규 사업 발굴과 서비스 개발 등 글로벌 협력도 추진할 예정이다.
미래에셋, 코빗 지분 92% 확보…박현주 회장 "모든 투자자산을 디지털 토큰화하겠다"
이번 하나금융의 투자 결정은 최근 미래에셋그룹의 코빗 인수 추진 이후 나온 대형 금융권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미래에셋그룹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은 지난 2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지분 92.06%를 약 1335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NXC와 SK스퀘어 지분을 모두 사들이는 구조다.
미래에셋컨설팅은 당시 인수 목적에 대해 "가상자산 기반 미래 성장동력 확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이 거래소 인프라 확보를 통해 가상자산 사업 확대 기반 마련에 나선 것으로 해석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가상자산 시장 성장 가능성에 꾸준히 주목해왔다. 미래에셋그룹이 추진 중인 '미래에셋 3.0' 역시 인공지능(AI)과 가상자산을 전통 금융 시스템에 융합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중장기 비전을 담고 있다.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모든 투자자산을 디지털 토큰화해 전 세계를 촘촘히 연결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증권사 이어 은행까지 가상자산 거래소와 짝짓기…무너진 '금가분리의 벽'
그동안 전통 금융권의 가상자산 업계 진출은 사실상 막혀있었다. 금융당국이 지난 2017년 긴급대책을 통해 금융과 가상자산 산업의 결합을 제한하는, 이른바 '금가분리' 기조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명문화된 법은 아니었지만 업계에서는 '그림자 규제'처럼 작용해 금융사의 가상자산 진출이 불가능했다. 가상자산 업계의 전통 금융권 진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난 5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미래에셋그룹의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이사회 합류를 허용하며 금리분리 처음으로 변화 신호가 감지됐다. 당시 금융당국의 '금가분리' 빗장이 풀린 이번 수리를 계기로 비금융 계열사를 통한 인수 절차가 본격화되며 약 9년간 막힌 금융사의 가상자산 시장 진출에 물꼬가 트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여기에 금융권 핵심인 은행까지 1조 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에 나서며 시장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하나은행의 두나무 투자 사례는 규제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이번 거래는 경영권이 바뀌는 대주주 변경 사안이 아니라 단순 지분 투자에 해당하는 만큼, 특금법상 가상자산사업자 대주주 변경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특금법상 가상자산사업자(VASP)는 대주주 변경 시 FIU 심사 이슈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번 딜은 송치형 회장 중심의 기존 지배구조에 변화가 없는 소수 지분 투자라는 점에서 규제 부담을 피해 갔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하나금융이 현행 규제 틀 안에서 가장 파급력이 큰 수준의 투자를 단행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존 은행들이 거래소와 실명계좌 제휴 수준에 머물렀다면, 하나은행은 직접 거래소 운영사 지분을 확보하며 시장 선점에 유리한 방향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의미다.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STO), 실물자산토큰화(RWA) 등 디지털자산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금융권 움직임도 한층 빨라지는 분위기다. 향후 법인 시장 참여 확대와 제도 정비가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는 만큼 금융사들도 선제적으로 시장 기반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핵심은 수익원 다변화와 시장 선점”이라며 “전통 금융권이 가상자산을 단순 투기 자산이 아니라 수탁·결제·STO·RWA 같은 새로운 인프라 사업으로 보기 시작했고, 제도화가 진전되기 전에 먼저 자리를 선점하려는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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