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9년간 떠돈 '유령 규제' 금가분리…당국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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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2026년 5월 22일, 오전 07:00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뉴스1 김명섭 기자

2017년 12월. 정부는 가상자산 투기 과열을 막겠다며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에는 짧지만 강력한 문장이 담겼다. 금융사의 가상자산 보유·매입·담보 취득·지분투자를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국회 입법도 아니었다. 명확한 처벌 규정이 있는 법률도 아니었다. 사실상 행정지도에 가까운 조치였다. 그러나 그 한 줄은 이후 9년 가까이 국내 금융권과 가상자산 산업 사이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됐다.

당시만 해도 은행과 증권사들은 가상자산 시장을 본격적인 산업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거래소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이 차세대 금융 인프라로 떠오르자 금융권 내부에서도 관심은 빠르게 커졌다.

문제는 제도였다. 금융사는 법과 감독 체계 안에서 움직이는 산업이다. 명문화된 금지 규정이 없더라도 당국이 사실상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면 쉽게 움직일 수 없다. 특히 은행과 증권사처럼 규제 의존도가 높은 업권일수록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 특유의 '관치 금융'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권에서는 “괜히 당국 눈 밖에 났다가 검사나 인허가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결국 금융사들은 직접 진입 대신 시장을 멀리서 바라보거나, 우회적인 방식만 검토해야 했다.

그 사이 글로벌 금융시장은 빠르게 변했다. 미국에서는 은행과 핀테크, 가상자산 기업 간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 경쟁이 본격화됐고, 전통 금융회사들도 디지털자산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금가분리 탓에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묘한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이 거래소 코빗 인수에 나선 것이다. 다만, 금융 계열사가 아닌 비금융 계열사를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금가분리 규제를 의식해 우회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번에는 '금융의 꽃' 은행까지 나섰다. 최근 하나은행은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실명계좌 제휴나 커스터디(수탁) 기업 투자 수준이 아니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운영사의 주요 주주로 은행이 올라서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만약 금융사의 가상자산업 진출이 이제 사실상 가능해진 것이라면, 그동안 금융권을 짓눌러온 ‘금가분리’는 도대체 무엇이었나. 법적 근거조차 불분명한 행정 신호에 시장 전체가 9년 가까이 묶여 있었던 것인가.

금융당국도 더는 침묵해선 안 된다.법도 아닌 그림자 규제가 9년 가까이 금융·가상자산 산업 전체를 지배해 온 현실. 이제는 누군가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다.

chsn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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