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2025.9.8 © 뉴스1 임세영 기자
금융당국이 지난해 상장법인과 전문투자 법인의 가상자산(디지털 자산) 투자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도 지방선거 등 정치 일정에 밀려 지연되면서법인 시장 개방과 산업 제도화 작업이 장기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2월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 로드맵'을 발표하고 단계적으로 법인 시장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로드맵에 따르면 1단계로 비영리법인과 거래소의 현금화 목적 매도를 허용하고 2단계에서는 상장법인과 전문투자 법인에 대한 매매 실명계좌 발급을 허용할 계획이었다. 이후 일반 법인으로까지 시장 참여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도 제시됐다.
실제 1단계 조치는 시행됐다. 비영리법인과 거래소는 일정 요건 아래 보유 가상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게 됐고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이 업비트를 통해 가상자산을 매도한 사례도 나왔다.
하지만 업계가 주목했던 핵심 과제인 '법인의 실제 투자·매매 허용'은 여전히 멈춰 있다. 금융위가 당초 지난해 하반기 중 상장법인과 전문투자 법인 대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운영 기준이나 시행 일정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법인 시장 개방 '하세월'…2017년 규제 이후 9년째 제자리
국내에서 법인 가상자산 거래가 사실상 막힌 것은 2017년 말부터다. 당시 정부는 가상자산 투기 과열과 자금세탁 우려가 커지자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 수립'과 '가상자산 투기 근절 특별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후 은행권은 법인 명의의 실명계좌 발급을 제한했고 거래소 역시 법인 고객 거래를 사실상 막아왔다. 정부는 당시 미성년자·외국인 거래 제한과 함께 금융기관 규제를 강화하며 시장 과열 진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후 9년 가까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 투자자 중심 구조로 고착화됐다.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정책 논의가 전반적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선거 국면 등이 맞물리며 주요 현안 우선순위가 밀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달 말 개최 가능성이 거론됐던 가상자산위원회 회의도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회의에서 법인 투자 가이드라인 관련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에 주목해왔지만 일정이 재차 미뤄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거래소들을 대상으로 실무 점검과 자료 요청에 나서고 있지만 이를 두고 법인 투자 허용 논의가 본격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최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를 통해 주요 거래소들의 고객확인(KYC)과 의심거래보고(STR),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등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 로드맵' 2단계 시행 대비 준비 현황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전에도 유사한 자료 요청과 의견 수렴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왔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사전 점검 절차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 일정에 밀린 '디지털자산자산기본법'…산업 제도화도 멈췄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 역시 장기간 답보 상태다. 당초 올해 상반기 중 법안 발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입법 일정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법인 투자 허용과 함께 가상자산 산업 전반의 제도화 작업도 사실상 멈춰선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법인 투자 시장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매매 계좌만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커스터디(수탁), 랜딩(대출), 결제, 스테이블코인 등 연관 산업에 대한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관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더라도 이를 안전하게 보관·운용·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 확대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법안이 늦어질수록 기업들의 사업 전략 수립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과 가이드라인 방향이 빨리 확정돼야 투자와 서비스 구조를 결정할 수 있는데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사업 계획을 구체화하기보다 정책 방향부터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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