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채굴·스테이킹 과세 기준을 정비하고 스테이블코인 소액 결제에 대한 세금 부담을 줄이는 등 가상자산 세제 개편에 본격 착수했다. 반면 한국은 내년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앞두고도 여전히 과세 여부와 세부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면서 제도 정비가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는 X(옛 트위터)를 통해 가상자산 세제 개편 법안들을 공개했다.
이번 법안에는 △가상자산 기부 공제 △채굴·스테이킹 과세 명확화 △투자자 과세 서류 간소화 △가상자산 자발적 신고 제도 △조세 남용 방지 규정 등이 담겼다.
가장 주목받는 내용은 '채굴·스테이킹 과세 명확화'다. 그동안 업계는 블록체인 활동으로 가상자산을 취득할 때와 이를 매도할 때 각각 세금이 부과되는 이중과세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에 따라 법안은 채굴·스테이킹으로 취득한 자산에 대한 과세를 완화하거나 일정 부분 예외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스테이블코인으로 소액 결제를 하거나 블록체인 수수료(가스비)를 지급할 때 발생하는 자산 가치 변동에 대해서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했다.
법안 마련에는 세입위원회뿐 아니라 미국 재무부 등 관계 부처도 참여했다. 제이슨 스미스 하원 세입위원장은 현재 의회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클래리티법 논의와 별개로 가상자산 과세 체계 정비를 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기존 과세 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해 혁신을 저해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번 법안 역시 투자자의 세금 신고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채굴이나 스테이킹 보상을 받거나 거래 횟수가 많은 투자자들의 경우 세금 계산과 신고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는 평가다.
로빈 싱 코인리 최고경영자(CEO)는 "클래리티법이 가상자산 산업의 전환점으로 평가받지만, 현행 과세 체계는 여전히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며 "취득가나 보유 기간 정보가 누락되는 경우가 많고,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과 비수탁 지갑 활동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이용자가 거래 내용을 직접 파악하는 부담이 있다"고 지적했다.
맥스 밀러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의원도 "미국은 가상자산 혁신을 주도하고 있지만 현행 세법은 시장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미스 위원장은 "디지털자산 특유의 세금 문제를 명확히 하며 투자자와 중개업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며 "미국인이 신용카드나 현금 대신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고 싶다면 복잡한 세금 서류 작업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날 열린 청문회에선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청문회는 입법 절차의 첫 단계로 수정안 마련과 위원회 심사(마크업), 하원 본회의 표결 등을 거쳐야 한다.
법안이 시행될 경우 미국 국세청의 행정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국세청은 올해 새로운 가상자산 세금 신고 제도를 도입한 이후 신고 건수가 급증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대규모 인력 감축까지 겪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가상자산 과세 시행 여부를 놓고 국회의 초당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국민의힘은 올해 초 업계와의 간담회를 통해 가상자산 과세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가상자산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22% 세율을 적용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은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국세청도 관련 제도 마련에 착수했지만, 에어드롭과 디파이 등에 대한 과세 기준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 시장 성장에 맞춰 과세 제도를 현실적으로 정비하려는 움직임"이라며 "한국도 시장 상황을 반영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