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민서홍의 도시건축]

재테크

이데일리,

2026년 6월 22일, 오전 09:20

[민서홍 건축가] 광화문 광장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공공재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한 사람이 점유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이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도시 한가운데 열려 있는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다. 우리는 그 위를 걷고 머무르고 때로는 외친다. 광화문 광장은 그렇게 ‘모두의 공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천의 장이 됐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열린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한 성격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불과 반세기 전인 1974년, 이곳은 왕복 12차로의 도로로 채워진 자동차의 영토였다. 속도와 효율이 도시의 미덕으로 간주되던 시기, 도로는 확장됐고 보행자는 밀려났다. 차를 소유하지 않은 이들은 도시의 중심에서조차 주변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심장부가 사람보다 기계를 위해 작동하던 시대에 광화문은 사실상 ‘지나가는 공간’일 뿐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도시의 중심이지만 누구의 것도 아닌 기능만 남은 공간이었다.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또 다른 비공공적 공간이었다.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 늘어선 국가 권력의 축선이었다. 왕이 행차하고 의례가 펼쳐지는 주작대로로서 이 공간은 철저히 권력의 질서와 위계를 시각화하는 장치였다. 공간은 열려 있었지만 사용의 주체는 제한됐고 접근은 가능했으나 참여는 허락되지 않았다. 백성은 존재했지만 공간의 주체는 아니었다. 광화문 일대는 애초부터 시민의 일상적 이용을 전제한 장소가 아니었던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 광화문 광장의 변모는 단순한 도시 재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동차의 도로를 걷어내고 권력의 축선을 시민의 장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곧 도시의 주인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었다. 이는 물리적 설계의 변화이자 정치적 선언이며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탄핵 정국에 수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고 이곳에 모였던 장면은 이 공간이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의 기반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동시에 이곳은 대중문화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일상의 산책로이자 휴식의 장소로도 기능한다. 권력의 상징이었던 장소가 시민의 경험으로 재작성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어 있음’의 가치다. 광장은 건물처럼 프로그램이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비어 있음으로써 다양한 사건을 수용하는 장이다. 그 비어 있음은 방치가 아니라 가능성의 여백이며 도시가 스스로 갱신할 수 있는 조건이다. 광화문 광장이 집회와 축제, 관광과 일상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느슨한 구조에 있다. 설계는 최소화하고 사용은 극대화하는 역설이 이곳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전환은 서울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 몰 역시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 국회의사당에서 워싱턴 기념탑, 링컨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약 3.2km의 거대한 축선은 국가의 상징체계를 집약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시민의 일상과 정치적 표현이 공존하는 장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가 제니를 향해 달려가던 그 장면처럼 개인의 기억과 국가의 서사가 겹쳐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 역시 집회와 시위 그리고 여가가 뒤섞이며 민주주의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권력의 기념비와 시민의 신체가 같은 평면 위에서 만나는 순간 공간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살아 있는 장으로 전환된다.

광화문 광장과 내셔널 몰은 서로 다른 역사와 맥락 속에 있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도시의 중심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과거에는 권력과 속도의 논리로 이 질문에 답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시민과 경험의 언어로 답한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사용이며 디자인이 아니라 참여다. 공공공간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점유되고 해석되며 갱신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공공성’은 추상이 아닌 실천으로 드러난다.

결국 광화문 광장은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다. 자동차의 도로에서 시민의 광장으로, 권력의 축선에서 민주주의의 장으로 변모한 이 공간은 여전히 변화 중이다. 우리가 이곳을 어떻게 사용하고 기억하는지에 따라 광화문은 앞으로도 계속 다른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 역시 그때마다 새롭게 쓰일 것이다. 어쩌면 광장은 답을 제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질문을 지속시키는 장치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공간을 단순히 소비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용하고 점유하며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 반복 속에서만 공공성은 유지되고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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